우리는 스승을 상실한 캄캄한 세상에 덩그러니 내동댕이쳐져 있다누구나 착각하는 건 자유라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그 착각의 결과는 의외로 덤덤히 받아들이려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의 중요한 하나가 소위 사회의 리더라는 사람들이 만든 세계관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추종을 해서 그렇다. 무작정 추종하는 것은 그
“남의 잘못을 탓하지 말라! 남의 단점을 보지도 말라! 나의 단점을 변호하지 말라! 나의 단점을 고치기에 힘쓰라!”경남 양산에 있는 사찰인 통도사(通度寺) 경내의 오래된 기둥 곳곳에 붙어있는 검은 나무판에 쓰인 경구 중 하나입니다. 남을 책망하고 탓하기는 쉬우나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이 어렵고, 어렵게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어도 자신을
죽은 자의 이름보다 산 자의 지위가 중요시되는 우리 사회의 조문 문화신문 부고(訃告)란을 늘 챙겨 보는 편이다. 안 보고 지나가면 마음에 걸린다. 혹시라도 아는 분이 돌아가셨거나 지인이 상을 당했는데 결례하는 일이 생길까봐 하는 노파심에서다. 물론 요즘에는 관혼상제의 알림도 편리해져서 카톡이나 문자로 부음이 날아오는 경우가 많다. 상주가 직접 보내는 경우도
폰의 주인공은, 어머니 당신이 아닌 바로 나 자신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학기말 고사를 백일장으로 대신했다. 무슨 시제를 내걸 것인가, 꽤 오래 생각했다. 학생들이 어렵지 않게 술술 써나갈 수 있는 소재, 생활밀착형 이야기, 자신의 삶에서 희로애락의 사연이 담긴, 그리고 나를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글감을 내려고 많은 후보를 떠올렸다. 고민 끝에 내가 칠판에
서로에게 채권과 채무가 없는 평등한 만남의 즐거움을 느껴보길오랜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던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식당의 위치와 약도를 보냈는데 마지막 낯선 한 줄이 날 당혹케 했다. 사족이라고 전제하면서 ‘그런데 계산은 n분의 1’이라고 덧붙인 것이다. 이런 약속 통지는 처음이어서 순간 여러 생각이 오고갔다. 나는 그 친구와 만나면 내
속담이나 격언이라는 건 대부분이 기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지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속담은 처세술이자 봉건적 생활 방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요, 당위의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난, 속담이나 격언에 따라 살고자 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 반대로 살고자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달리 해석을 해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죄를 미워해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최전선에서 자기 몸으로 떠안은 사람들을 기억하길 바라며잠을 잊고 책을 읽었던 흔치 않은 경험 중에서 아직 잊지 못하는 것은 처음 삼국지를 읽었을 때다. 삼형제의 도원결의와 함께 시작되는 수많은 전투와 영웅담에 홀딱 빠져 어느새 동이 터온 경우도 있었다. 그때는 오로지 영웅호걸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휘두르는 칼과 창에 수
사진과 인문학의 관계를 생각해 보다인문학이 유의미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그것은 과학이라는 객관과 논증을 중요한 가치로 삼은 학문이 등장하면서 그에 대한 반성의 차원에서였다. 과학이 객관을 요구한다면 인문학은 주관을 필요로 하고 과학이 논증과 절대성을 필요로 한다면 인문학은 다양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를 기반으로 사진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진
현실의 어려움을 넘어 꿈의 날개를 활짝 펴고 힘차게 비상하기를… 오월의 한가운데다. 황사에 미세먼지에 희뿌연 날들도 많았고, 때 이른 더위에 짧은 봄이 금세 다 가버린 듯도 했지만 비가 한번 쓸고 가니 깨끗하게 씻긴 바람과 햇살이 그지없이 맑고 상쾌하다. 문득 모든 것이 처음 지어졌을 때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
타성과 전통의 틀로부터 벗어나서 세상을 바라보길…삶을 평가하는 것은 온당한 일일까? 그것도 어떤 삶이 옳고 어떤 삶이 그르다고 평가하는 일이라면 말이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이 삶이 옳네, 그르네’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은 이런 삶을 존중하고 이렇게 살고자 한다&r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해야 할 일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어깨동무를 해주는 것대학에서 강의를 한 지 27년째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학생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역사와 사회에 대해 토론한 적이 꽤 많았다. 리포트도 많이 내주고, 시험도 자주 치렀고, 학점도 짜게 주었다. 엄하게 가르쳤다. 그러한 교수 방식을 지금은 쓰지 않는다. 나이가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정치 과잉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고유한 가치가 보다 존중되는 쪽으로 발전해 나가야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지금은 그 뒷수습이 한창이다. 선거는 언제나 많은 정신적, 심리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사회와 나라의 진로를 정하고, 크고 작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답을 어떤 사람 하나에게 던지는 표로 구해야 하는 만큼 계산과 생각이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선거의
가치가 있는 모든 생각과 삶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세상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를 단적으로 말 할 수 있다면 어느 것이 가장 좋을까? ‘사진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이 문맹인 사회’ 아닐까? 우리는 아침에 눈 뜨고 밤에 눈 감을 때까지 하루에 과연 몇 번이나 사진 이미지를 마주칠까? 그 복제된 이미지를 말이다. 토끼전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자라의 꼬임에 속아 용궁에 간 토끼는 뭐 하는 짐승이냐는 용왕의 물음에 땅에서 사는 짐승이라 대답했을 것인데, 그 용왕은 땅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었을까?
바꿀수 없는 속성으로 단정 짓고, 규정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권에서 부는 바람이 세상을 심란하게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정치에 신경 끊고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고, 그것이 바란 삶도 아니다. 정치라는 건 세상이 피치 못하게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의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양보도 하고, 협
봄날을 가득 채운 생기 앞에 인간의 창조물은 덧없는 존재일 뿐봄이다. 햇살이 따사로워지자 사방에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난다. 남녘에는 벌써 매화가 지고 있다. 아쉬워할 사이도 없이 벚꽃 망울이 한껏 부풀었다. 조금 있으면 과수원도 여기저기 물들 것이다. 복숭아꽃이 피면 이내 배꽃이 필 것이다. 도시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이런 꽃들에는 더 깊
이주민은 일하는 기계가 아닌 함께 가꾸어 가야 할 다문화의 주체적 사람 인간의 이주는 수 천 년 동안 진행되어 오고 있지만 노동력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이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주로 갓 식민 상태에서 벗어난 나라들에서 식민 종주국으로 이주해 간 이주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공동체를 형성해갔다. 그러면서 세계 각 지역에서 일어난
2016년 벽두에 국회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2016 병신년(丙申年) 합동 국운 발표회에서 벌어진 행사다. 그들이 벌인 ‘재수 굿’은 집안의 평안, 가족의 화복과 건강, 생업의 번성 등을 기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데 이 일에 대해 모 기독교 단체가 ‘굿판으로 망한 구한말의 역사를 보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참
세상은 내적 성찰의 대상이 아닌 외적 실천의 장 슬픔은 기쁨보다 오래 가고, 무겁게 남는다. 그래서 기쁨을 맞는 기쁨보다 슬픔을 당한 슬픔으로 우리 인생은 짓눌러지곤 한다. 그래서 부처가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한 말이 이렇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일까. 아무리 회자정리(會者定離)라 위로하여도 만남 뒤에 오는 이별은 못 견디게 슬프다. 슬픔 중의 슬픔은 죽음으
우리나라에서 대학 전공으로서의 인문학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대학 밖에서의 인문학에 대한 요구는 점점 커가고 있다. 이런 흐름은 우리 역사를 보면 하나의 필연이다. 해방 이후 개발 독재의 시대를 거쳐 산업사회의 기반을 다지는 동안 사람들은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에 골몰했다. 그 사이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의 문제는 돌이켜 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희망도 꿈도 없어진 시대…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예전에 어떤 일본인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책을 써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듯하다. 한국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면 무조건 ‘아니, 그게 아니라’라는 말부터 한다거나, 운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