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으로 재해 다발

안전문화 정착 위한 노사민정 협력 필요
국민안전처, 재난·재해 근절 위한 혁신의 씨앗 기대

우리나라의 안전수준이 매년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선진국 수준의 안전문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먼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올해 발생했던 수많은 재해와 사건사고가 이를 증명한다.

무재해 원년을 목표로 시작했던 2014년이었지만, 다양한 사건사고로 인해 연일 ‘인재(人災)’와 ‘안전불감증’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회자됐다. 우리 안전문화의 현주소를 되짚어보고, 이것이 안전 선진국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길 바라면서 부실한 안전관리, 미흡한 안전의식이 원인이 되어 발생했던 2014년도의 주요재해를 모아봤다.


1. 끝나지 않은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의 ‘악몽’
지난 2012년과 2013년은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로 많이 발생했었다. 구미 불산누출사고, 상주 염산누출사고, 청주 불산누출사고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때문에 산업현장과 당국의 허술한 화학물질관리체계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크게 일었고 올해만큼은 국민 모두가 산업현장에서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염원했다. 하지만 이런 간절한 바람은 2014년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 지 한 달이 갓 넘은 2월 13일 물거품이 됐다. 경기 남양주시에 소재한 B기업의 빙과류 생산공장에서 5t 용량의 외부 저장용 암모니아탱크 배관이 폭발해 암모니아가스 1.5t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협력업체 직원 도 모(55)씨가 사망했으며 권 모(50), 황 모(41), 이 모(39)씨 등 직원 3명이 다쳤다. 이처럼 해를 넘기자마자 또 유해화학물질 누출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산업현장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하는 국민들의 원성이 더욱 커졌다. 게다가 해를 마감하는 12월 10일에는 대구시 달서구 모 도금공장에서 치아염소산염을 황산탱크에 주입하는 탱크로리 기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직원 46명이 유독가스를 흡입하는 사고까지 발생하자 산업현장의 유해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는 극에 달했다.


2. 경주리조트 체육관 붕괴, PEB 건축물 점검 강화 계기
올해는 안타깝게도 대학생과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많았다. 이 암울한 비보(悲報)의 서막은 아직 매서운 혹한이 맹위를 떨치던 2월 중순 올랐다. 지난 2월 17일 오후 9시 15분경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소재한 모 리조트 체육관에서 지붕이 갑자기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체육관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부산외대 학생 고 모씨(19세) 등 10명이 숨졌다. 또 204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정부의 조사결과 이 참사 역시 부실시공과 허술한 안전관리, 형식적인 비상대응매뉴얼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이에 법원은 검찰이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한 관련자 13명에 대해 모두 금고와 징역 등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국토부는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조치로 전국의 공업화 박판 강구조(PEB, Pre-Engineered Buil ding) 건축물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한편 PEB, 기둥과 기둥 사이 간격이 20m 이상 건물 등 특수구조 건축물에 대한 설계·시공·감리 기준을 크게 강화했다.


3. 세월호 침몰,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대참사
경주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로 인한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남 진도 해상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6647t급 여객선 세월호가 지난 4월 16일 침몰한 것이다. 이 사고로 단원고 학생을 포함한 295명이 희생됐고 9명이 실종됐다. 그리고 사고 발생 216일 만인 11월 18일 수색 작업이 종료되고 정부합동사고대책본부도 해체돼 남은 실종자들의 생사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300여 명의 어린 생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정부의 재난안전관리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성토가 이어졌고, 정부는 대대적인 국가안전체계 변혁에 나섰다. 그 결과 안전행정부와 해양경찰청, 소방방재청이 사라지고 이들의 역할을 통합 수행하는, 이른바 국가재난안전관리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담당하게 될 국민안전처가 11월 19일 출범했다. 국민안전처는 소속 정원만 1만 명이 넘는 거대 조직으로, 그동안 육상(소방)과 해상(해경)으로 나뉘어 있던 재난 대응 체계를 통합 관리하게 된다.


4. 사상 초유의 지하철 추돌사고 발생, ‘249명 부상’
지난해부터 크고 작은 사고로 우려를 자아내던 지하철에서 결국 올해 대형 사고가 터졌다. 5월 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승강장에서 승하차 후 출발하려던 2258호 열차를 뒤따르던 2260호 열차가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강장 진입을 앞둔 2260호 열차가 출발하지 않은 2258호 열차를 발견하고 급정거를 시도했으나 추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사고로 앞 열차의 차량연결기 7개가 파손됐고, 뒤따르던 열차는 바퀴가 탈선했다. 특히 기관사와 승객 등 249명이 부상을 당했다. 뒤따르던 열차의 속도가 빨랐거나 앞선 열차의 승객들이 승하차 중이었다면 자칫 또 하나의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사고는 선행 열차인 2258호 기관사 박 모(48)씨가 사고 직전 문이 정상적으로 닫히지 않아 스크린 도어를 3차례 개폐하다가 1분30초 정도 지연 출발했지만 이를 관제소에 보고하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후속 열차 기관사 엄 모(45)씨는 정지 신호가 표시된 것을 발견하고 비상 급제동을 했으나 추돌했다. 특히 열차의 간격이 좁아진 상황에서도 이들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화를 키웠다. 즉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인재였던 것이다. 한편 이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는 지하철 1~9호선 전 노선에 대한 특별 합동점검을 실시했다.


5. 고양종합터미널 화재로 69명 사상
지난 5월 26일 오전 9시 2분경 경기도 일산의 고양종합터미널 지하 1층에서 불이 났다. 사고 직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총 40여 대의 차량과 131명의 인력을 투입해 9시 29분께 진화에 성공했다. 불과 30여 분 만에 화재를 진압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상당했다. 무려 8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부상을 당한 것이다. 이번 사고도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발생한 인재였다. 발화지점인 터미널 지하 1층에서는 당시 80여 명이 아웃렛 푸드코트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다. 시공사 측은 내부 공사에 따른 방화구획변경 허가를 지난 4월 22일 시로부터 받아 5월 8일부터 착공에 나섰다. 방화구획변경 등의 공사를 진행할 경우 관할소방서에 신고하고 안전대책을 세운 뒤에 공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이들은 관할당국의 회신을 받지도 않은 채 공사를 급하게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에 방화셔터와 스프링클러 등을 작동할 수 있는 긴급전원 시설을 차단한 채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정부는 ‘임시소방시설의 화재안전기준 재정안’을 통해 모든 공사현장에는 최소 3단위 소화기를 2대 이상 비치토록 의무화했다.


6. 장성요양병원 화재, 부실한 소방시설이 원인
5월 28일 0시 30분께 전남 장성군 삼계면에 위치한 효실천사랑나눔요양병원(효사랑병원) 별관 2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30여 분 만에 진화됐지만 인명피해는 상당했다. 간호조무사 1명과 치매노인 20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는 등 대형 인명사고가 난 것이다. 이 사고 역시 소방안전에 대한 총체적 부실 등이 야기한 인재(人災)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전남 장성경찰서에 따르면 이번 대형참사는 병원건물이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패널로 지어진 점과 간호인력이 부적정하게 배치되면서 발생했다. 또 비상구를 자물쇠로 잠금·폐쇄하고 소화기를 사물함에 보관하는 등 소방안전관리가 부실했던 점이 인명피해를 크게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고를 계기로 보건복지부는 강화된 ‘요양병원 안전관리방안’을 지난 8월 21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모든 요양병원은 면적에 상관없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또 직원별로 구체적 임무가 포함된 자체 소방계획에 따라 모의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7. 태백서 또 열차 충돌사고 발생
2호선 지하철 충돌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7월 22일 오후 5시 50분경 제천에서 서울로 가던 제4852호 관광열차와 청량리에서 강릉으로 향하던 제1637호 무궁화호가 정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충격으로 두 열차는 충돌 부위를 중심으로 크게 파손됐다.
또 관광열차 4량 중 1량, 무궁화열차 6량 중 1량 등 총 2량이 탈선했다. 이로 인해 1명이 사망하고 93명이 부상을 당했다. 코레일과 정부에 따르면 이번 열차충돌사고는 신호장치와 자동열차제동장치 등의 각종 안전시스템이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관사가 정지신호를 확인하지 않는 등 안일하게 근무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에 코레일은 관리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열차 운행정보에 대한 분석을 강화해 규칙 위반자를 철저히 가려내고, 인적오류 방지를 위한 취약시간대 승무적합성 검사를 불시에 실시할 방침이다. 특히 사고 책임에 따른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엄격히 적용, 업무 담당 직원은 물론 관리자까지 문책 범위를 확대키로 했다.


8. 도심을 강타한 공포 ‘싱크홀’
올해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지반이 아래로 꺼지는 이른바 ‘싱크홀’ 공포가 수도권을 덮쳤다. 6월말부터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 5건의 싱크홀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더니 7월 28일 인천 영종하늘도시 아파트 인근도로에 이어 8월 5일 송파구 석촌동에서도 싱크홀이 발생하면서 사회적인 불안감이 커졌다. 이처럼 수도권에서 싱크홀이 잇따라 발생하자 정부가 원인 분석과 함께 대책마련에 나섰다. 한편 민관 합동 특별팀이 국내외 싱크홀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국토 대부분은 단단한 화강·편마암 등으로 구성돼 있어 해외와 같은 대형 싱크홀은 발생하기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즉, 우리나라에서 싱크홀은 대부분 인위적인 요인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특별팀은 지하공간 개발행위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할 방침이다. 먼저 대규모 지하개발 현장의 경우 지하수, 지반 등의 안전성을 미리 조사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지하개발 사전안전성 분석’ 제도를 도입·시행키로 했다. 특히 지하개발에 따른 지하시설물의 파손, 다짐부실, 지반침하 등에 대한 감독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9. 전형적인 후진국형 재해,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지난 10월 17일 오후 5시 53분께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광장에서 ‘제1회 판교테크노밸리 축제’가 한창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환풍구 덮개가 붕괴, 관람객 27명이 20m 아래로 추락했다. 공연을 보기 위해 관람객 30~40여 명이 한꺼번에 환풍구 덮개 위로 올라가면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이 사고로 16명이 숨지고, 11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도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원인은 지지대 부실시공과 용접불량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고 환풍구의 경우 3개의 받침대 중 세로 2개는 일체형 강관으로 시공됐지만 가로 받침대는 짧은 강관 3개를 용접으로 이어붙인 형태였다. 즉 환풍구 위의 하중을 버티지 힘든 구조로 제작된 것이다. 이 사고를 계기로 국토교통부는 ‘환기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배포했다. 가이드라인은 일반 지붕의 활하중을 1.0kN/m(화분을 올려놓거나 유지관리 인력이 서 있을 수 있는 무게)로 규정했다. 또 산책하는 사람의 하중만 예상될 경우에는 3.0kN/m의 하중을 견뎌야 한다. 아울러 정원 및 집회 용도, 물건 적치, 차량 진입이 예상될때는 5.0kN/m의 하중 기준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아울러 가이드라인은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대지와 도로·공원·광장 등 인접부에는 가능하면 환기구를 설치하지 않도록 했다. 다만 불가피한 경우 도로 등 경계로부터 2m 이상 간격을 둬야 한다. 특히 급기구 및 환기구의 높이는 2m 이상으로 하며, 공중에 노출되는 경우 투시형 벽으로 설계하도록 했다. 이밖에 가이드라인은 환기구 등의 덮개, 지지구조 철물 및 연결재의 균열, 탈락 등 변화가 있는 경우 안전점검을 받도록 했다.

 


10. 전남 담양펜션서 화재 발생 ‘4명 사망, 6명 부상’
지난 11월 15일 오후 9시 40분께 전남 담양군 대덕면의 한 펜션 별관(야외 파티장)에서 불이 발생했다 화재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에 의해 50여 분 만에 진화됐다. 하지만 이 사고로 고 모씨와 유 모씨 등 4명이 숨졌으며 펜션 주인 최 모씨와 대학생 장 모씨 등 6명이 크고 작은 화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번 화재사고도 안전불감증에 기인한 사고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날 화재는 바비큐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야외 파티장에서 발생했다. 58㎡ 면적의 야외 바비큐장은 단층으로 건물 바닥 등이 목재로 돼있었다. 더욱이 건물 벽면은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패널로 지어졌으며 지붕은 불이 옮겨 붙기 쉬운 억새로 덮여 있었다. 지붕과 바닥 높이는 2.5m에 불과했다. 창문만 몇 개 있을 뿐 출입문도 단 1개뿐이었다. 특히 화재가 발생한 야외 파티장은 건축물대장에 등록되지 않은 불법 건축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이곳의 소방시설 역시 부실했다. 사고 당시 소화기 9개가 비치돼 있었지만 이중 3개는 생산된 지 10년이 넘은 노후제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화재 당시 투숙객들이 사용한 소화기 2개도 10년 이상 경과됐고, 1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피해를 키운 것으로 조사됐다.

<공동취재팀>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