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안전사고 체험수기 (1화)

세상에 올 때 내 맘대로 온건 아니지마는 이 가슴엔 꿈도 많았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꿈만 같은데 두 번 살 수 없는 인생 후회도 많아 스쳐간 세월 아쉬워한들 돌릴 수 없으니 남은 세월이나 잘해봐야지….

김성환이 부른 <인생>이란 곡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불려지고 있는 노래가사말들 속에는 모두 하나같이 많은 뜻이 내포하고 있다. 이 노래는 사고 이후 내 마음속에서 지나온 세월에 대한 미련과 앞으로의 다가올 내일에 대한 희망가로 불려지고 있다.

2013년 10월 31일 운명의 그날은 40년 넘도록 살아온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인생의 파고를 마주한 날이었다. 그해 여름은 유독 태양이 뜨거웠고 무더움에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 날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장마철을 앞두고 시작된 공사는 비교적 장마를 잘 피해가면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가을기운이 느껴지자 일들이 겹치면서 공사기간도 예상외로 길어지게 되었고 어느덧 10월 마지막 주가 되었다. 남은 공사기간에 대한 부담감과 거리에 뒹구는 낙엽들로 인해 심적인 압박감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왠지 모르게 더해만가고 있었다.

공사막바지라 공사에는 많은 인원들이 투입되었다. 마침 외벽마감공사를 위해 비계가 설치되고 있어 그 위에서 타일작업을 하는 근로자들에게 안전에 대해 유의할 것을 강조하는 게 나의 일과의 일부분이었다.

사고 당일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날 오후 외벽 타일공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유리를 달기위해 창호작업 팀들의 공정이 늦어지면서 작업을 관리하던 내가 오후부터는 작업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준비가 덜된 공정단계였지만 일손이 부족해 어쩔 수가 없었다.

용접을 보조하기 위해 3m가량 사다리 올라 용접하는 반대편에서 파이프를 잡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사다리가 사시나무 떨 듯 흔들리기 시작 하였다. 그 순간 입에서는 어! 어! 하는 소리만 나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내가 만약 이 파이프를 내손에서 놓고 사다리에서 뛰어 내린다면 반대편에서 용접을 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대로 파이프를 안고 밑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 순간 떨어지면서 왼쪽발이 먼저 땅에 닿았고 발목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만큼의 강한 통증이 머릿속 깊이까지 전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현장에 있던 모든 작업자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고 바닥에 누워있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119에 신고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저 멀리에서 엠블란스의 요란한 싸이렌소리와 함께 구급대원들에 의해서 가까운 정형외과로 이송되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단순골절로 생각하고 있던 내 생각과는 달리 정밀검사 결과는 심각했다. 이에 병원은 보호자와 회사대표에게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그리하여 종합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의 첫날밤은 통증으로 인해 지금껏 살면서 지내온 밤들 중에서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추락사고로 인한 충격으로 발목에는 10kg가 넘는 추를 매달고 꼼짝없이 일주일 가량 시간을 보내고서야 조각난 뼈들을 맞추는 수술을 받을 수가 있었다. 수술 당일 무통주사에도 불구하고 밤새 고통에 시달렸고 또 다시 가장 긴 밤을 보내야만 했다.

3개월의 입원과 8개월이 넘는 통원치료로 인해 1년 가까운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지금도 일주일에 2~3회 치료를 받고 있고 아직 아물지 않은 통증으로 인해 내년 봄에 또 한 번 발목 유압술(고정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이 나왔다.

‘한순간의 실수가 평생을 간다’라는 말이 있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사고로 인해 몸에 남은 장애는 치유하기 어렵다. 우리는 안전 불감증 시대에 살고 있다. ‘설마 나한테 불행이 오겠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고가 나는 것이다. 누군가 아무리 ‘안전’을 강조해도 내 스스로가 조심하지 않으면 행복이 불행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기에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자료제공 : 안전보건공단·한국NGO신문>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