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고용노동부 국제협력담당관

하인리히는 산재예방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산업재해 방지’(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에서 “산재예방은 과학이자 예술이다.”고 주장하면서 관리적 접근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안전관리자의 위상과 역할을 생각하면서 새삼스럽게 음미할 필요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안전관리자의 위상과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안전관리자에게 요구되는 지식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언뜻 보기에 쉬운 것 같지만 한마디로 답변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찬찬히 들여다보지 못한 문제이기도 하다.

안전관리자에게는 기술적 지식만 중요한 것일까?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과연 그럴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안전관리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안전관리자는 사용자를 보좌하여 사업장의 안전에 관한 기술적 사항을 ‘관리’하는 자이다. 사용자는 재해예방에 관하여 기술적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자로서 안전관리자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안전관리자는 사업장의 안전관리에 관하여 실무적으로 사령탑적인 역할, 즉 기획조정의 역할을 담당하는 자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안전관리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인식부터 많은 오해와 편견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안전관리자 제도가 법정 제도로 오래 전부터 운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효성 있게 운영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 안전관리자를 선임하기만 하면 사업장 안전관리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안전관리자의 선임 취지는 사업주로 하여금 안전관리자를 선임하여 그 자에게 안전관리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여 법령상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임에도, 형식적으로 선임해 놓기만 하면 그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이다.

둘째, 안전관리자가 사업장의 안전관리를 모두 다 수행하여야 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생산라인에 있는 자들은 생산활동에만 주력하면 되고 안전활동은 안전관리자가 행하여야 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이다. 이러한 생각이 지배하는 사업장에서는 생산라인에 대한 안전관리자의 안전활동의 지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셋째, 안전관리자가 갖추어야 할 지식은 공학적·기술적 지식이라는 생각이다. 안전을 기술적인 문제로만 생각하고 ‘관리’를 하여야 한다는 사고가 약하다. 이러한 사고에는 안전관리자와 특정분야의 전문가의 역할을 구별하지 못하는 혼선이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안전관리가 체계적·종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지엽적·파편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넷째, 안전관리자는 산재예방 전반에 대하여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사업장에서는 안전관리자 개인의 능력과 한계에 대한 인식이 없고 안전관리자를 만능 플레이어로 생각하여 다른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오해와 편견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계부터 인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 정부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제가 안전관리자 제도 당초의 취지대로 개정·보완되었는데도 현장에서는 거의 작동되고 있지 않은 실정부터 정확히 인식하고 이에 대한 지도감독을 충실히 해야 한다. 기업을 외부에서 모니터링하는 위치에 있는 정부의 올바른 인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전관리자 배출의 산실인 학계 또한 산업현장에서 요구되는 안전관리자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 하에서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운영하여야 한다. 협의의 안전공학·기술적인 지식 외에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산업안전보건‘관리’에 대한 비중을 높여야 한다. 즉, 안전관리자가 사업장 안전관리에 관한 법적 사항과 행정적인 사항까지를 커버하기 위한 지식을 섭렵하도록 하여야 한다.

안전관리자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들에게 그런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안전관리자에게 직무수행의 여건을 제대로 조성해 주는 것이다. 안전관리자가 안전에 관한 기술적 사항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권한을 부여받고 역량개발의 기회를 제대로 제공받고 있는지 기업 안팎에서의 모니터링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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