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박현모 미다스북스

  

 

세종식 경영 : 인재경영과 지식경영

  세종 치세를 가능케 한 인물들은 여럿 있지만 그 중에 핵심적 인물로는 허조를 들 수 있다. 나중에 조선 후기의 정조에 의해서도 허조는 황희와 함께 세종을 좌우에서 보필한 재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허조의 여러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사시스템의 정립이라고 할 수 있다. 허조는 10여 년간 이조판서를 지내면서 추천된 인물들을 검증하는 데 진력했다.

  허조의 인재검증 시스템은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떤 관직에 사람을 임용할 때 그는 먼저 이조의 낭관(􆧎官)으로 하여금 매우 정밀하게 간택하게 했다. 인사 담당 사무관에게 해당 후보자의 경력과 자질, 그리고 부패 혐의는 물론이고 그 가족관계까지 꼼꼼히 살펴보도록한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이조 내부의 관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재차 평론에 평론을 거듭하도록 했다. 그 후보자가 그 자리에 적합한 지, 더 나은 적임자는 없는지에 대해서 내부의 전문가들로 하여금 격렬히 토론하게 했다. 마지막은 이조 밖의 여론을 들어보는 단계이다. 특히 고위 인사의 경우 인사를 주관하는 부서의‘적합 판정’에도 불구하고 조정 안팎의 의론이 좋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반드시‘중의(衆議)가 합한 연후에야 임명하도록 했다. 그런데 허조에게 있어서 인재검증의 3단계, 즉‘간택’과‘평론’과‘중의’의 절차를 거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인사원칙이 있었다. 그 하나는 인사담당자의 공적인 자세였고, 다른 하나는 인재를 지키는 일이었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거나 국가정책을 비판하다가 곤경에 처한 관리들을 보면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구원하곤 했다. 세종도 그런 허조를 믿고 일을 맡겼다. 재위 15년에 최윤덕은 1만 5천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지금의 중강진 건너편의 파저강 일대에 사는 여진족을 토벌했다. 이 공로로 최윤덕에게 무슨 상을 줄 것인가 물었을 때, 허조는 영중추(􆩋中樞)를 가설하여 포상하자고 말했다. 세종은“만약 한 사람의 훌륭한 정승을 얻으면 나랏일의 근심을 없앨 수 있다”면서“최윤덕은 가히 영의정도 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영의정은 그 임무가 지극히 무거우므로 전공(戰功)만 가지고 임명할 수는 없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세종의 비전 경영
  마음경영 - 백성을 감동시켜라
  세종 리더십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가까이는 조정 신하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혼신을 다해 국가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며, 밖으로 나가서는 백성들의 마음을 감응시켰고, 멀리는 명나라 황제까지도 감동하게 했다. 세종은 백성을 감동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치를 폈쳤다.

  첫째, 세종은 노인을 공경하는 정치를 펼쳤다. 90세 이상의 노인에게 관직과 봉작을 제수하곤 했다. 천인의 경우 90세가 되면 남녀 모두에게 각각 쌀 2석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100세 이상인 경우는 남녀 모두 천인을 면해 주었고, 동시에 남자에게는 7품을, 여자에게는 봉작을 주어“늙은이를 늙은이로 여기는 어짊”을 베풀었다.
 
  둘째,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를 들 수 있다. 세종은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처지에 놓여있는 병자나 죄수들이 잘못되지 않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 예컨대 재위 16년 한여름에는 궁궐에서 사용하는 얼음을 활인원(活人院)에 보내 열병을 앓는 사람들을 치료케 했으며, 재판을 신속히 진행하도록 했다. 또한 세종은 가벼운 죄로 갇혀있는 죄수는 보석으로 내보내게 했다. 
  이처럼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세종은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였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영구히 끊어져서 각기 생생하는 즐거움을 이루도록”하는 것이 국왕 본연의 임무라고 보았던 것이다.

  셋째, 사람들을 건강하게 살고 제 수명을 누리게 하는 일이다. 요절하거나 비명횡사하지 않고 제 수명을 누리다가 가족들 앞에서 편히 눈을 감는 마지막 순서의 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누리기 힘든‘삶의 질’의 조건이다. 그런데 비명횡사나 요절과 같은 불행은 국가제도나 사회적 여건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 상당 부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세종이 천재(天災)와 지이(地􆩻)의 있고 없는 것은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마는, 배포 조치(配布措置)를 잘 하고 못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다할 수 있다“『( 세종실록』19/01/12)라고 말할 때‘사람의 힘’이 바로 그 점에 대한 세종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성들의‘삶의 질’향상을 위해서 세종은 제생원 제도를 보완해 버려진 아이들의 사망을 막는 한편, 노비의 출산휴가를 산후 7일에서 출산 전후 100일로 파격적으로 개선했다. 또한 의료제도를 개선해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를 줄이려 노력했으며, 감옥에서 억울하게 병들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법규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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