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사고, 인재가 부른 참사…또다시 안전불감증


황교안 국무총리 “유사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근원적 대책을 마련하라”
고용부·안전처·국토부 등 정부합동 건설현장 안전점검 실시
정계 ‘구의역 사고 방지법’ 등 7개 법안 패키지 발의키로


◇안전불감증 논란은 이번에도 계속
지난달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경기도 남양주의 지하철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나면서 안전불감증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본적인 작업절차 및 안전수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오전 7시 27분께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의 진접선 지하철 건설현장에서 폭발에 이은 붕괴가 발생해 근로자 4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을 당했다.

현재까지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하 밀폐공간에서 용단 작업 중 가스폭발로 붕괴가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현장의 안전관리가 상당히 부실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황홍락 형사과장(남양주경찰서)은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사고 당시 현장소장과 감리업체 관계자가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사고발생 당시 상황에 대해 추가 확인하고 발화점과 사고 원인 파악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황 과장은 또 “산소통과 가스통의 경우 작업 후에는 기본적으로 보관소로 옮기게 돼있는데, 안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며 “책임소재 여부 등 자세한 것은 확인 중에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가스안전공사 측과 함께 가스통의 가스잔존 용량 등을 확인하고, 폭발이 일어난 지하 15m 작업장에서 가스가 샜는지 집중 조사하고 있다. 작업자의 용단작업 중 강력한 가스폭발로 붕괴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만큼 가스누출 여부가 사고원인을 찾는데 결정적인 열쇠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찰은 사고 당시 밀폐 작업장에 화재경보기와 환기장치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피해자 진술을 확보하고 이 부분도 수사 중이다.

결론적으로 밀폐되고 협소한 지하공사 현장에서 충분히 가스 폭발사고의 위험성을 예상할 수 있었기에,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인재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김모(19)씨가 승강장으로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졌던 사고도 마찬가지다. 이 사고는 지난해 11월 강남역에서 유사사고가 발생한지 반년 만에 일어난 사고라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이 역시 각종 안전규정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특히 서울메트로의 경우 2년 전 노·사가 참여하는 ‘안전위원회’를 구성해놓고도 단 한 번도 회의를 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안전불감증에 빠진 단면을 여실히 드러냈다. 서울메트로 사측과 노조는 지난 2014년 5월 상왕십리역 추돌사고를 계기로 안전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노사로 구성된 안전위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안전위원회의 운영방식을 둘러싼 노사간 이견으로 본회의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정부, 사고 수습과 재발방지에 총력
일단 정부는 사고를 수습하는 한편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데 동분서주하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1일 ‘남양주 지하철 건설현장 붕괴사고’와 관련, 신속한 사고 수습과 함께 추가 붕괴 우려에 대비한 현장 안전관리 강화를 긴급 지시했다.

총리실에 따르면 황 총리는 이날 오전 사고 상황을 보고 받은 뒤, 국민안전처·국토교통부·행정자치부 장관 등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황 총리는 “사고 현장과 주변 교통상황 관리 등 신속한 사고 수습은 물론, 추가 붕괴 우려에 대비해 현장 관리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며 “사망자에 대한 지원과 부상자에 대한 치료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황 총리는 “지하철 등을 포함한 건설현장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유사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근원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이에 정부는 13일까지 건설현장에 대한 정부합동 안전점검을 실시해 안전사고 발생을 근원적으로 막는 대책을 강구할 계획이다.

국민안전처는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관계 기관과 관련분야 기술사 등 민간 전문인력으로 점검단을 구성해 7일부터 13일까지 건설현장 안전관리실태를 살펴볼 계획이다.

합동점검단은 그동안 건설현장 안전관리를 위해 추진했던 ‘건설현장 맞춤형 사고예방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중점 점검하게 된다.

주요 점검사항은 ▲안전관리계획 준수 여부 ▲시설물구조 안전성 ▲적정시공 여부 ▲용접·가스위험물 보관 등 안전관리 실태 등이다. 점검은 소규모 건설현장(50억 미만), 가시설물 공사, 건설기계 사용 건설현장, 가스·폭약 취급 건설현장 등 20개소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정종제 안전처 안전정책실장은 “이번 점검은 안전관리 시스템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를 집중 점검하기 위해 실시되는 것이다”라며 “점검 과정에서 현실에 맞지 않은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집중 발굴해 개선하는 한편, 시설물 관리 태만 등 규정 위반 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와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안전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을 자회사가 아닌 서울메트로의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지난 2일 오후 시장 집무실에서 진행한 1인 방송 ‘원순씨 엑스(X)파일’에서 안전업무 담당 인력의 증원에 초점을 둔 자회사 설립 논란과 관련해 이 같이 밝혔다.

박 시장은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다루는 일에 ‘그냥’, ‘대충’이라는 말은 없다. 때문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외주에 맡길 수 없다”며 “자회사 설립은 최소한의 안전 장치일뿐이고 안전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박 시장은 “자회사 말고 서울메트로 정규직 채용도 검토해보겠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서울메트로는 지난 1일 인력부족, 과도한 업무량 등 인력운용과 관련된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8월 1일부로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시민단체 “명백한 사회적 타살”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서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사회적인 타살’이라며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일 안전사회시민연대는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가 발생한 서울 광진구 구의역 1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크린도어는 안전문이 아니라 살인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안전사회시민연대는 “한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동일한 유형의 사망사고가 났다면 이는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엄격한 조사를 통해 부실시공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덧붙여 “비용절감이라는 명목으로 안전 업무마저 하청을 주고 비정규직을 쓴 탓에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 취급되고 있다”며 “모든 안전 업무의 외주화, 하청화를 철회하고 직영화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전사회시민연대는 이날 정부와 국회에 ▲서울메트로 안전 업무 직영 체제 도입 ▲안전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한편 남양주 사고와 관련해서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이하 연맹)은 ‘기업의 살인’이라며 처벌을 촉구했다.
연맹은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잔류가스에 의한 폭발이 사실이라면 안전문제를 총괄하는 원청인 포스코 건설이 근로자들을 죽음의 현장으로 밀어넣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맹은 또 “LPG 가스가 혹시나 새지는 않는지, 지하 작업공간에 차 있지 않는지는 모두 현장의 안전관리자가 당연히 점검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어서는 “폭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는 가스통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밀폐장소에는 환풍기를 설치해야 한다”라며 “산업안전보건법령에도 명시돼 있는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연맹은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연맹은 “저가낙찰과 이로 인한 안전공사비 절감 등의 악순환이 사고 원인일 것”이라며 “현재 낙찰구조에선 무조건 저가로 입찰해야 낙찰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공사비용 중 줄어드는 부분은 모두 안전관리비일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연맹은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저가 수주의 손해를 공기단축으로 만회하기 위해 속도전을 하게 된다.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라며 “중층다단계하도급 구조에선 안전에 대한 책임이 도급을 타고 내려갈수록 가벼워진다”고 강조했다.

◇국민안전과 직결되는 업무에는 정규직 투입
사고 직후 정계에서는 유사사고의 재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법·제도 개정 작업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와 관련해 이번 사고의 원인을 간접 고용으로 규정하고,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업무에는 정규직을 투입하도록 하는 7개 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부문부터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근절해 나가야 한다”며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을 을지로위원회 첫 번째 입법 활동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을지로위는 “우리 경제는 경영효율화라는 미명 아래 인력감축, 고용유연화 등 온갖 형태의 비용 절감이 당연시 되고 있다”며 “가장 많은 산업재해 업종인 건설과 조선에 가장 많은 비정규직과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판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구의역 사고의 원인이 무분별한 외주화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이제 경영효율화를 앞세운 무분별한 외주화, 인력감축은 없어져야 한다”며 “근로자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면 시민의 안전도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으로 명명한 7개 법안을 패키지로 발의할 예정이다. 대개 국민의 생명과 관련한 업무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고용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7개안은 ▲생명안전업무 종사자의 직접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상 이인영 의원 대표발의)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개정안(한정애 의원 대표발의) ▲철도안전법 일부 개정안(김상희 의원 대표발의)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학영 의원 대표발의)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김경협 의원 대표발의) 등이다.

이인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3개 법안에는 철도·도시철도·항공운수사업· 전기·가스·석유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한 업무의 경우 기간제 및 파견, 외주용역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다. 김경협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포함된다.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작업에 대해서는 사내하도급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김상희 의원의 ‘철도안전법’은 철도차량의 정비와 스크린도어의 유지보수 등 안전과 관련한 업무에 대해 외주화를 금지하고, 철도 운영자가 직접 업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학영 의원의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안전과 관련한 작업의 경우 원청의 책임성을 강화하도록 했다.

최근 들어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선(당고개~진접) 복선전철 제4공구 건설현장 폭발·붕괴사고’는 모두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폐해를 여실히 보여줬다. 앞으로 유사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대책이 마련·시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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