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 그라미그랑 대표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20대 시절 김원기(43)씨의 꿈은 자신만의 사업장을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테리어를 좋아하고, 인테리어 시공을 잘한다는 것만으로는 사업장을 꾸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비록 작은 사업장이더라도 관리와 운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고민 끝에 그는 나이가 서른을 넘어갈 즘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모 목공회사의 구매·자재 파트 관리직으로 들어갔다. 소속은 구매·자재 파트였으나 작은 회사의 특성상 그에게는 인사·총무 파트의 일도 맡겨졌다.
난생 처음 해보는 생소한 일에 힘들기도 했지만, 먼 훗날 자신의 사업장을 경영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그는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그는 이곳에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고민 끝에 그는 나이가 서른을 넘어갈 즘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모 목공회사의 구매·자재 파트 관리직으로 들어갔다. 소속은 구매·자재 파트였으나 작은 회사의 특성상 그에게는 인사·총무 파트의 일도 맡겨졌다.
난생 처음 해보는 생소한 일에 힘들기도 했지만, 먼 훗날 자신의 사업장을 경영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그는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그는 이곳에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손가락 절단 사고 입어
2001년 1월. 새천년을 맞아 거리는 많은 사람들의 웃음과 환호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김원기씨에는 이런 설렘을 누릴 여유가 없었다. 밀려드는 일거리 때문에 그를 비롯한 전 직원이 몇 주째 야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렇게 신년도 2주가 지나 15일이 됐다. 그날은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하루 분량의 일을 마칠 수 있었고, 직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서둘러 퇴근을 했다. 하지만 관리직이었던 그는 직원들처럼 주어진 일을 다했다고 무작정 퇴근을 할 수가 없었다. 공장의 정리정돈도 해야 했고, 이튿날 업무계획도 살펴봐야했다.
텅 빈 공장을 정리하던 그는 한 직원이 다듬다만 목재를 발견했다. 자신도 인테리어 일을 하며 목공 기계를 많이 다뤄봤기에 직원의 일도 덜어줄 겸해서 목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목재를 전동수압대패(일명 대우시)로 밀어 넣었다.
기계음이 공장을 가득 메우고 있을 때 그의 눈에 창문 밖에서 소복소복 내리고 있는 눈이 들어왔다. 홀로남아 잔업을 한다는 것에 조금 서러움이 밀려들던 차였는데 마침 내린 하얀 눈은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오른손에 감전되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작업 시에는 꼭 집중해야
창문으로 가있던 시선을 서둘러 기계로 가져왔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진 후였다. 날카로운 대패의 날에 안전장갑과 함께 그의 오른손 검지가 절단됐다. 붉은 피는 어느새 그의 손을 타고 목재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위험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딴 생각을 하다니’ 자신에 대한 책망이 제일 먼저 머리 속에 떠올랐다. 게다가 자신은 관리직으로 늘 직원들에게 안전교육을 시키던 사람이었다. 결국 자신도 말뿐인 ‘안전’을 외쳤다는 것을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그리고 공장에는 그 혼자뿐이었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지압하며 구급차를 불렀다. 수술을 마치고 그는 검지가 사라진 오른손을 몇날 며칠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희망 가득한 집 만들 터”
재해를 입고 난 후 그는 소극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구매·자재를 담당하는 관리자로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잦았는데 그에게는 이것이 고욕이었다. 악수를 해야 하는데 늘 오른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숱한 마음고생 끝에 결국 그는 검지 의수를 착용하기까지 했다. 헌데 의수를 착용하자 오히려 사람들은 악수를 할 때마다 그의 손을 다시 한 번 내려다 봤다.
그렇게 5년여가 흘렀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그의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의수를 껴도 상황이 같다면 차라리 벗고 살자는 마음이 들었다. 의수를 벗고 첫 악수를 한 날, 그와 악수를 한 바이어는 그의 잘린 손가락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때서야 그는 알 수가 있었다. 장애라는 편견은 결국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이후 그의 성격은 예전 밝았던 때로 돌아왔다. 이에 힘입어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던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8월에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자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인천 송도에 자신만의 작은 회사를 차렸다.
김원기씨의 향후 계획은 인테리어 디자인 및 시공을 넘어 전원주택의 시공이나 단독주택의 리모델링을 하는 것에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다. 자신이 산재를 넘어 새 삶을 만들어 냈듯, 새로움으로 가득찬 집을 만들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연슬기 기자
skyway@safety.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