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날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에 위치한 예삐꽃포장학원. 가을의 따사로운 오후 햇살이 창을 통해 내리쬐는 가운데 꽃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중년의 한 남자가 정성스레 꽃을 다듬고 있다. 손길은 다소 거칠지만 잎 하나를 정리할 때도 조심스럽게 매만지는 모양새가 얼마나 꽃을 사랑하는지 느끼게 한다.

이 손길의 주인공은 올해 53살의 김명제씨다. 그는 30년 가까이를 건설현장에서 보낸 베테랑 건설맨이다. 한 평생 차갑고 무거운 철근과 목재만 매만지던 그가 어떻게 꽃을 만지게 되었을까? 그 사연의 시작은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톱날에 절단재해 입어

 

경기도 양평에 있는 모 기도원 리모델링 현장. 김명제씨는 이곳에서 만능 일꾼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용접이면 용접, 목공이면 목공 못하는 게 없었다.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30여년을 건설현장에서 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숙련이 된 것이다.

사고가 난 그날엔 그는 목재를 다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안전모와 보안경, 안전장갑 등 안전장구를 착용하고 조심스럽게 작업에 임했다. 그 오랜 시간을 건설현장에서 보냈어도 단 한 번의 사고도 입지 않았었던 것은 이처럼 늘 안전장구를 챙겨 입고, 작업수칙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창 작업을 하던 중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핸드그라인더의 톱날이 무엇에 걸렸는지 갑자기 핸드그라인더에서 분리돼 튀어나온 것이다. 톱날은 순식간에 그의 오른손 검지를 절단시키고 하늘로 날아갔다. 안전장갑을 꼈으나 매우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톱날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비점검 철저히 했어야

동료 근로자들의 도움을 받아 잘린 검지를 들고 인근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응급조치가 잘 이루어졌고, 병원도 빨리 찾아 접합수술이 가능했다.

가슴을 졸이며 받은 수술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외형상으로는 다섯 손가락을 유지할 수가 있었지만 손가락을 가로지르는 큰 흉터가 생긴데다 손가락의 감각도 거의 없어졌다.

특히 손기술 하나로 생계를 이어온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손가락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은 앞으로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톱날이 조금만 더 빗겨나가 머리 쪽으로 향했더라면 아마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어나갔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지났고, 그는 그사이 3번의 수술을 더 받아야만 했다.

산재가 또 다른 기회 줘

한 번 사고를 입자 다시 건설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평생 배운 기술이라고는 건설 관련 기술밖에 없었기에 결국 돌아가야만 한다는 강박감이 늘 그를 휘감았다.

그러던 차 근로복지공단에서 반가운 연락이 왔다. 근로복지공단의 지원 하에 산재근로자들의 재취업을 돕기 위한 화예, 컴퓨터 등의 강좌가 개설됐으니 한 번 참여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 소식은 그의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해주었다. 안 그래도 꽃, 분재, 난 등을 가꾸는 게 취미생활이었는데 이참에 제대로 배워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길로 마음을 정하고 화예과정에 등록을 했다. 그리고 두 달여가 흐른 지금은 꽤 능숙한 솜씨를 갖추게 됐다. 특히 무엇보다도 다시 웃음을 되찾게 됐다는 것이 그가 얻은 가장 값진 소득이었다.

그의 향후 목표는 자신 만의 화원을 여는 것이다. 자신이 얻은 희망을 꽃에 담아 더욱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산재의 고통을 막 벗어난 그의 희망이 반드시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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