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후 수백회의 여진이 이어졌다. 주민들은 집을 떠나 공원과 학교 운동장 등 안전지대를 찾아 헤맸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파는 생필품은 마구잡이식 사재기로 동이 났다. 평생 겪어보지 못한 지진의 공포 앞에서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민들을 더욱 절망하게 만든 것은 정부였다. 늦장 대처에도 모자라 뒤늦게 대응 매뉴얼의 존재 유무를 놓고 갑론을박을 거듭했다.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경주를 비롯한 경상도 일대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산업을 이끄는 석유화학공단과 기계산업단지 등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시민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진으로 인해 폭발사고 등이 발생 시 그 여파는 차마 가늠을 할 수 없을 정도다.

다행히 아직까지 이번 지진으로 대규모 화학공장의 피해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하지만 화재폭발 및 누출 위험에 있는 설비에 충격이 가해졌음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충격에 의한 열화현상이 육안으로는 식별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내부적인 열화현상은 분명 발생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2차, 3차의 연이은 충격이 가해진다면 폭발 및 누출사고로부터 안전하다고 감히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이 사실을 알기에 시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 중국 텐진항 폭발사고 등을 통해 시민들은 중대산업사고는 단순히 산업현장의 문제만이 아니고 인근 주민과 지역의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불신의 시선이 더 커지기 전에 서둘러 시민들이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

정부와 산업현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석유화학단지 등에서 발생 가능한 중대산업사고에 대응해 예방 매뉴얼을 갖춰놓고 있으며, 조직도 구성되어 있다.

이 조직의 중추는 고용노동부 중대산업사고예방센터다. 센터의 컨트롤 아래 중대산업사고매뉴얼, 연구실 사고 대응 매뉴얼 등 다양한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다.

이제 이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산업현장에서의 화재 및 폭발, 유해가스 누출에 의한 치명적인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증명해야한다.

정부와 현장은 매뉴얼이 잘 지켜지도록 위기대응 훈련과 사전 현장점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이번 지진을 계기로 중대산업사고 예방 관련 제도의 기준을 상향하고, 매뉴얼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연구해야 한다.

산업현장은 지도감독의 회피를 위한 보여주기식 매뉴얼이나 서류로만 존재하는 매뉴얼을 폐기한 후, 현장의 위험성이 가감 없이 반영된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사고는 매뉴얼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매뉴얼을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 역시 명심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실제 작동이 가능한 매뉴얼인지를 거듭 확인해야 한다. 상황발생 시 실제 현업 부서에서의 비협조 또는 인식 부족으로 대응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아 사고가 확대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경주지역 지진이 우리 산업현장 전반의 매뉴얼을 다시 한 번 재정립하고 가다듬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우리는 다음 재해를 사실상 무방비로 맞이할 수밖에 없다. 현장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예방 매뉴얼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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