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효 대림산업 안전보건팀 차장

 

홍해와 지중해를 관통하여 세계의 항로를 바꾼 대역사(大役事)인 수에즈 운하공사는 프랑스의 토목기사이자 외교관이었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가 총괄했습니다.

불굴의 의지로 10년 동안 수로를 파서 이룩한 성공은 그에게 커다란 자부심을 주었고, 운하계의 스타로 부상한 그는 12년 후 파나마 운하 공사의 총책임자로 기용됩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다시 한 번 증명하려는 공명심에 가슴이 부풀었던 레셉스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1881년 착공했던 프로젝트는 8년간의 악전고투 끝에 결국 실패했습니다.

수에즈는 해발 15m의 평원지역인데 반해 파나마는 해발 150m의 열대 밀림지역으로 극명한 환경 차이가 있었지만 레셉스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무작정 수로를 팠고, 그 무모한 추진력은 수에즈의 성공이 레셉스에게 만들어준 ‘휴브리스(Hubris)’ 때문이었습니다.

‘극단적 오만과 자기과신’을 뜻하는 그리스어 ‘휘브리스(hybris)’가 어원인 ‘휴브리스’는 토인비가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를 바꾼 성공에 도취되어 아집에 빠진 이들을 칭했던 말입니다.

레셉스의 ‘휴브리스’는 그야말로 참혹한 결과로 나타났는데, 8년간 동원된 55,000명의 40%에 달하는 22,000여 명의 근로자가 공사 중에 사고와 말라리아로 희생됐고, 약 10조 원의 공사비를 쏟아부은 프로젝트는 파산했습니다.

한반도 전체 인구가 2천만에 불과했던 시대에 그것은 실로 천문학적인 손실이었고, 그 참담한 결과를 견디지 못한 레셉스는 결국 정신병으로 사망합니다.

15년 후인 1904년 갑문식으로 공법을 변경하고, 미군 공병대가 투입되어 10년간 43,000명의 인원 투입, 400조 원에 달하는 공사비, 6천여 명의 희생을 치르면서 운하가 완성되었습니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완성된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물길은 해마다 파나마 GDP의 20%에 이르는 통행료 수입을 올리면서 파나마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어있습니다.

http://tvcast.naver.com/v/292950 (파나마운하 운영 동영상)

놀라운 사실은 계단식 수문과 부력으로 선박의 상하, 수평 이동을 병행하는 갑문식 공법은 레셉스가 파나마 운하공사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누가 봐도 그 지형에서 가장 적합한 공법이었지만 레셉스에게 채택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휴브리스’에 빠진 한 사람의 맹목(盲目)의 영향으로 수만 명의 목숨과 천문학적 비용 그리고 20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한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판단을 내린 다음에는 모든 사실을 그 견해를 뒷받침하고 동의하는 쪽으로 편집한다. 그 판단의 오류를 알리는 증거가 아무리 많아도 무시하고 이미 결정한 것의 정당성을 지키려고 한다.’ -베이컨-
‘사람들은 이미 결정한 것을 확신하려고 모든 정보를 편집하고 재단 한다.’ -워런 버핏-

‘휴브리스’에 빠지는 대표적인 이유와 그 예방책입니다.
1. 결정 번복시 초기의 잘못에 대한 비난과 문책이 우려되는 경우(적극적 도전에서 발생한 실패에 대한 문책을 줄이고 착수와 실행 단계의 책임자 별도 선정)
2. 실행 완료 후에 손익이 드러나는 일에서 무모한 투자 지속(실행 지속 시 발생하는 손익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솔직한 보고)
3. 결정 후 결정 부서의 무관심과 실행부서의 맹목적 실행(착수와 실행을 총괄하는 조직 구성)
4. 복지부동하는 조직의 관성적 타성(실행 중 수시로 진행 결과에 대한 피드백 공유)

반면에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큰 성공을 이룬 사례입니다.

2009년 1월 뉴욕에서 155명을 태운 항공기가 이륙 2분 만에 새떼와 충돌하여 엔진이 멈추는 사고가 발생했고, 비행 관제사는 사고대응지침에 따라 기장에게 인근 공항으로 회항하여 비상 착륙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4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장은 동력을 모두 잃은 비행기로 초저고도에서 공항 회항이 불가능한 현장 상황을 직관하고 매뉴얼에서 벗어나 인근의 허드슨 강에 비상착수(非常着水)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 선택으로 155명의 승객 전원이 무사 생존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당시의 사고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일반적 사고대응 지침을 따랐을 경우 탑승객 전원 사망은 물론, 시가지 추락으로 인한 끔찍한 재앙이 벌어졌을 사고였습니다.

항공기 사고의 특성상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은 현장 상황을 통찰한 ‘체슬리 슐렌버거’ 기장의 냉철하고 유연한 판단의 결과였습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극장 상영 중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은 새로운 상황에서의 유연한 판단이고 그 판단의 순간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고정관념의 틀입니다.

‘휴브리스’의 고정관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의 반복이 습관을 만들며, 습관이 삶을 엮어갑니다.

만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면 행동하는 대로 생각하는 무모함에 이르고, 습관에 갇혀버리면 ‘휴브리스’의 맹목(盲目)에 빠져듭니다.

언제나 가장 결정적 요소는 사람이고, 그 인적요소(人的要素)의 근본 바탕이 되는 것이 습관이니 매 순간 자신의 습관을 잘 살펴서 ‘휴브리스’의 맹목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교병필패(驕兵必敗): 승리의 자만에 안주한 군대는 반드시 패배하고
겸병필승(謙兵必勝): 겸손한 태도로 훈련한 군대는 반드시 승리한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