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외제차를 타고 다니거나 양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심한 눈총을 받을만한 일이었다. ‘국산품 애용’이라는 모토가 양심의 기초로서 오랫동안 우리 마음 속에 굳건히 자리 잡아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10년이 못 되는 시간 속에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그 ‘국산품 애용’은 어느덧 신화가 되어 그 때 그 이야기, 당시 있었던 커뮤니케이션의 한 과정으로 전락하고 이제는 거의 어떤 효용이나 가치를 잴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일이 그렇게 되기에는 세계화라는 피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역사상 전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우리에게 던져 줬기 때문이다.

필리핀 수빅으로 옮겨 그곳에 세계 최대의 조선소를 짓는, 그러면서 이 땅의 노동자를 모두 해고하고 공장 문을 닫는 일은 여전히 우리 ‘대한민국’의 일인가? 아니면 일개 한진중공업의 일인가? 이탈리아 회사 필라가 이 땅에 들어와서 한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그 수익의 상당 부분을 이곳에서 소비한다 해도 그 공장의 국적이 이탈리아라 해서 그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옷은 여전히 외제인가? 고용 없는 성장을 통해 자본가들은 무한 성장하고, 노동자는 무한 해고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국적이 같은 국민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같은 목소리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뻐해야 하는가? 한 직장에서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급여를 받는 한국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벗은 한국인 정규직 노동자인가 아니면 방글라데시인 비정규직 노동자인가?

세계화 속에서 자본가들은 이제 그 말 안 듣는 자기 나라 노동자와 싸우고 골치를 썩여가며 사업을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을 벗어나 그 착하고, 자본에게 순종하며 정부가 잘 보호해 주는 시장으로 옮겨 가면 된다. 그곳에서 값싼 노동자들을 고용하면 그 노동자들로부터 감사의 절을 수도 없이 받고, 높은 이익을 최고로 올릴 수 있으며,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후생 복지나 사회 환원이라도 할라치면 쏟아지는 양심의 찬사는 그칠 줄 모른다. 그러니 그들은 자본을 미얀마, 필리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임금이 낮은 나라들에 투자하러 간다. 그 뿐인가. 베트남, 캄보디아, 파키스탄으로부터 ‘인간 기계’를 수입하여 저임금을 주면서 또 이익을 극대화 한다.

다른 나라로 자본을 이전하는 것은 본국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하와 정리 해고를 받아들이라 겁박하는 수단도 된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본국의 공장 문을 닫고 나가면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일은 시장 개척이 되면서 곧 애국이라는 신화로 포장 미화된다. 마찬가지로, 이 땅으로 들어온 이주 노동자들에게도 동등한 법적, 인권적 보장이나 복지의 혜택은 줄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 어느 때나 처분이 가능한 ‘불법 노동자’이기 때문에.

결국, 세계화와 그 때문에 일어나는 자본 이전, 노동 이주, 비정규직, 정리 해고 등의 문제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차원의 문제다. 따라서 그 대책도 국제적이고 세계적이어야 한다. 일본의 반핵운동가들이 1980년대 한국에 와서 원전 건설 반대 집회를 하고, 한국의 환경 운동가들이 2000년대 몽골 고비 사막에 숲을 조성하는 운동을 펼치듯, 한국의 노동 운동가들은 미얀마로, 필리핀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이 땅으로 들어오는 이주 노동자에게로 다가가야 한다. 필리핀 수빅의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않으면서 이 땅의 정리 해고와 싸운다는 것은 그 기초가 너무나 부실하다. 국제 연대를 하지 않으면서 반세계화 노동 운동을 논한다는 것은 너무나 허망하다. 더 이상 기다리고 관망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갖고 싶어 하는 세계를, 우리가 우리 후손에게 남기고 싶은 세계를 위해 행동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의 기반은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종과 종교를 넘어선 세계 모든 사람들과의 연대여야 할 것이다.

세계가 변하면 인간의 모습도 변할 수밖에 없지만, 변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다. 자본과 세계화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 모두가 하나 되어 막아야 하는 일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국가와 민족 안에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연대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