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부산외국어대 러시아인도통상학부 교수

 

“인도는 모자이크다!” 인도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는 문구다. 그 안에 다양하고, 이질적이면서, 이율배반적이면서 잡탕스러운 힌두교의 세계관과 단순명료하고 논리정연하고 깔끔하면서 강한 이슬람의 세계관 둘이 섞여 있다. 인도를 이해하는 맛은 이 서로 다른 두 세계관이 절묘하게 조화 속에서 섞여 있음을 알아차리는데 있다. 두 종교가 만나는 그 안에서 인도 문화는 찬란한 꽃을 피웠다. 그런데 두 종교가 충돌을 하면서 그 꽃은 시들어가고 그 자리에 피가 배인 얼룩만 남아 있다. 그 맛과 얼룩을 유심히 찾아보는 것, 그것이 인도를 통해 사람 사는 세계의 참 맛을 알아가는 것이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힌두교 또한 사원을 찾아가 보면 그 종교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힌두교 사원은 작은 규모의 사당에서부터 거대한 규모의 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있다. 힌두교 사원에 있는 사당은 그 분위기가 항상 어두침침하다. 어둡고 칙칙한 그 안에 안치된 우상들의 모습은 갖가지 동물의 형상을 하거나 수많은 팔을 가진 시바 신 그리고 시바 신을 상징하는 남근석이 놓여 있다.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이마나 몸에 재를 칠한 채 기다리고 있다. 안에서는 사제가 시바 신의 석상 둘레에 점화된 등불을 둥글게 돌리고 있다. 수 세기 동안 향을 뿜어내는 냄새와 가지고 온 봉헌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내뿜는 공기가 쾌쾌하게 뒤섞여 배어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이 기원하는 것은 복이다. 자신들의 신에게 잘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물질적 기복 신앙이 힌두교의 중심에 있는 것은 그들이 삶과 세상은 윤회하는 것이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힌두교 안에 개종이나 박해라고 하는 문제는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다. 모두가 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8세기부터 인도에 들어온 이슬람은 힌두교와 완전히 다른 종교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알라(Allah)라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라는 점과 무함마드(Muhammad)라는 분명한 창시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그 절대적 신의 존재 앞에서 완전히 무력한 존재라고 믿는다. 따라서 최종의 예언자 무함마드라 해도 단순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또 신은 매우 추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 모습을 신상이나 그림으로 묘사할 수 없고,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 의지를 추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슬람의 사원인 마스지드(masjid)에는 신상도 없고, 제단도 없고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무슬림들은 싸움을 좋아하고 종교를 강압적으로 전파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실상 이 말은 유럽 사람들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인도에 들어 온 무슬림들은 토착 힌두들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해주었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바와는 달리 카스트 제도 같은 경우는 제도의 존속을 장려하고 브라만을 우대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을 매우 고상한 박애주의자로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것은 무슬림들이 인도에 온 것은 통치자로 온 것이지 종교 전파자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도 고유의 종교를 존중하고 사회 제도를 인정하면서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중세 역사를 통해 보면 외부에서 들어 온 무슬림 통치자들이 토착 인도인들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한 예는 찾을 수 없다.

서로 다른 두 종교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공존하면서 뛰어난 문화를 가꿔갔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전통은 영국 제국주의자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버렸다. 영국 식민주의자들은 인도를 완벽하게 통치하기 위해 힌두와 무슬림을 이간질시켰고, 결국 그 두 종교 공동체는 그치지 않는 싸움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학살과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로 다른 종교가 손을 잡으면 문화의 꽃이 피고, 등을 대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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