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에서 발생한 재해, 원청에도 똑같이 책임 물을 것


하청업체의 재해에 대한 책임이 원청에게 있을 경우 원청의 개별실적요율에 반영


고용노동부에 대한 20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국감이 지난 13일 열린 종합감사를 끝으로 마무리 됐다. 이번 종합감사에서는 산재은폐와 건설업 재해를 비롯해 경주 지진사태로 촉발된 근로자들의 작업중지권 사용 매뉴얼 등 각종 현안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환노위 의원들은 최근 메틸알코올 급성중독으로 근로자가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산업현장의 허술한 안전관리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높아진 점을 감안, 여야를 막론하고 고용노동부에 대해 날선 질의를 거듭했다. 다음은 고용노동부에 대한 마지막 국감에서 논의된 주요 사항을 정리한 것이다.

◇산재은폐해도 솜방망이 처벌, 제대로 불이익 줘야
이날 종합감사에서는 지난해 국감에서도 제기된 산재은폐 문제가 다시 한 번 논란의 대상이 됐다. 포문은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열었다. 한 의원은 고용부의 산재은폐 적발사업장에 대한 솜방망이식 처벌을 지적했다.

한 의원은 “H건설이 시공하는 원자력발전소 공사현장에서 97건의 산재은폐 사례가 적발됐는데 과태료는 2억9000만원, 즉 건당 300만원을 부과하는데 그쳤다”고 말했다. 이어서 “산재 미보고 과태료가 건당 최대 1000만원인 것을 고려했을 때, 악의적인 은폐 사례임에도 300만원만 부과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은폐 의혹 문제는 그 유사사업장까지 은폐여부를 감독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라며 “산재를 은폐하면 결국에 손해가 되도록 제도 개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장관은 “하청업체의 재해에 대한 책임이 원청에게 있을 경우 원청의 개별실적요율에 반영 하겠다”고 답했다.

 


◇‘위험의 외주화’ 관련 원청 책임자 구속 사례 단 1건에 불과
하청근로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도 이번 국감의 화두로 떠올랐다.

문진국 의원(새누리당)은 “지난해 주요 업종별 30대 기업에서 발생한 산재사망 근로자의 95%가 하청업체 근로자임에도, 원청 책임자가 구속된 사례는 단 1건에 그쳤다”며 위험작업의 고질적인 외주화 문제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문 의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30대 기업에서는 209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전체 사망자는 245명이며, 이중 하청업체 근로자는 212명(86.5%)으로 집계됐다. 반면 원청노동자는 33명(13.5%)에 불과했다. 중대재해에 따른 부상자도 최근 5년간 발생한 76명 중 하청노동자가 65명(85.5%)에 달할 정도로 하청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문 의원은 “하청노동자들이 죽음에 내몰리고 있는데도 책임을 진 원청은 거의 없다”라며 “5년간 원청에 대한 법원의 최종 처분 결과는 징역(1건), 집행유예(8건), 불기소·기소유예(43건), 벌금형(106건), 혐의없음(38건)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덧붙여 문 의원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원청 현장책임자는 집행유예를 받고, 원청 경영진은 혐의 없음으로 빠져나가고, 법인은 감당할 수 있는 벌금을 부과 받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문 의원은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조속히 처리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문 의원에 의하면 서울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2016년 5월 28일)와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고(2016년 6월 1일) 등을 계기로 고용부가 올해 6월 하청노동자 사망시 원청책임자에게 최고 7년의 징역형 또는 1억원의 벌금을 물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또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한정애, 이인영, 김경협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위험업무 도급금지와 원청 책임을 묻는 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문 의원은 “오늘도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하거나 다치고 있지만 대기업 경영진은 끊임없이 외주화와 다단계 하청을 이용해 자신의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있다”며 “법, 제도 강화는 물론 원청기업의 근본적인 안전의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이에 이기권 장관은 “최근 재해율이 높은 건설업체 주요 건설업체 CEO들을 만나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업체의 책임을 지속 강조하는 등 원청업체 최고경영자의 안전의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하청업체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원청업체에 똑같은 책임을 묻는 등 하청업체에 근로자 안전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지속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주지진 사태…“고용노동부가 구체적인 근로자 대피 기준 정립해야”
경주 지진사태 이후 산업현장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부의 미흡한 후속조치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정미 의원(정의당)은 “고용부는 자체 지진매뉴얼에 화학공장과 건설현장 등 사업장에 지진이 발생하면 작업중지 및 근로자 대피를 지시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경주에서 강진이 발생하고 이후 470번이나 지진이 발생했음에도 그 기간 동안 경주 인근 지사업장 어디에도 작업중지를 지시하지 않았다”며 고용부의 미흡한 대처를 질타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고용부는 지난 9월 12일 경주 지진발생 이후 총 9차례의 공문을 지방노동관서에 발송하고 지진 관련 피해와 공정안전보고서(PSM) 대상 사업장 피해 발생 시 보고를 요청했다. 하지만 고용부가 2005년 이래 작성해 운용중인 ‘지진재난 위기 대응 실무매뉴얼’에 따르면 지방고용노동관서는 화학공장, 건설현장, 조선업체 등을 대상으로 ‘여진 대비 사업장 근로자 진입방지 조치’ 및 ‘작업중지 및 근로자 긴급 대피 지시’ 등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고용부가 자체 매뉴얼 상의 작업중지와 근로자 긴급 대피 지시를 하지 않고 피해현황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 의원의 주장이다.

이 의원은 “고용부의 현재 지진재난 매뉴얼은 사실상 지진발생시 사업장에서의 추가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사후 대응책에 불과하다”면서 “지진으로 인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시행령 등에서 근로자 대피 기준을 명확히 하고, 매뉴얼에 구체적 시행방법 등을 명시하도록 관련 법규를 즉각 정비해야 한다”고 고용부에 주문했다.

이에 이기권 장관은 “이번 경주 지진의 경우 근로자 인명피해 또는 심각한 재산상의 피해 등이 확인되지 않아 작업중단 및 근로자 대피지시를 하지 않았다”라며 “관련 내용을 검토해 매뉴얼을 보완하는 등 적극 개선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안전관리제도(PSM) 실효성 떨어져…과태료 강화해야
중대산업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업장에 대한 공정안전관리제도(PSM)가 낮은 과태료 등으로 인해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원진 의원(새누리당)은 “2014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안전보건공단이 공정안전관리 이행실태점검에서 부과한 과태료는 1건당 13만원에 불과하다”며 “낮은 과태료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에 따르면 같은 기간 과태료 부과 건수는 1만8612건이었고 이에 대한 과태료는 약 23억5894만원이었다. 2년6개월간 사업소 1개당 평균 과태료 부과는 10건, 시정명령은 10건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공정안전보고서를 제출하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강력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다보니, 대부분의 사업장이 개선을 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과태료를 내는 것으로 무마하고 있다는 것이 조 의원의 주장이다.
실제 조 의원에 따르면 안전보건공단이 사업장별로 부여하는 이행상태평가 등급에서 매년 하위등급인 M등급을 받은 사업장 비율이 전체의 50%에 달했다.

조 의원은 “공정안전관리제도가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과태료를 높이는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라며 관련 법규의 강화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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