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대학은 더도 덜도 아닌 신자유주의라는 생산 현장의 논리가 공장을 넘어 학원 안으로까지 파급된 현장이다.

생산 현장에 요구되는 품질관리(QA) 방식이나 저스트인타임(just in time) 생산 방식이 대학가의 지배 이념이다. 소위 스펙은 대학생이라는 상품의 품질관리를 위한 인증서이고, 기업이 요구하는 그 상품을 철저하게 관리해 재고 없이 바로바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논리는 신조어인 ‘인적 자원(human resource)’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인간 전체를 ‘자원’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취업을 중심축으로 하여 전개되는 상황에서 학생은 스스로를 자원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되고 있다.

그 속에서 학생은 각종 자격증과 능력 점수를 통해 스스로를 상품화하도록 노력을 하고, 교수는 이러한 상품화의 또 다른 주체로 일하고 있다. 이러한 상품화가 이루어지는 곳이 대학이다. 따라서 대학은 더 이상 고전적 의미의 교육기관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인 수익사업체일 뿐이다.

교육은 생산수단이고 교육과정은 생산투입물이며 교원은 피고용자이고 국가와 사립대학 이사장은 자본가이자 생산자이며 학생은 상품, 즉 취업용 상품인 셈이다. 상품에도 고가와 저가가 있듯이 오늘날 치솟는 대학등록금은 고가 상품으로서의 학생을 제조하기 위한 수단이다. 학교 소유자가 자본을 신발공장에 투여하지 않고 교육기관에 투여했다고 해서 그 교육기관에서 일하는 교원들이 생산적 노동자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대학이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교육‘공장’이고 따라서 교육을 볼모로 삼아 자본의 가치증식에 기여하는 수익업체인 셈이다.

신자유주위 아래에서 대학은 아예 노골적으로 수익 사업에 나선다. 대학발전기금이라는 명분 아래 대학의 적립금이 1조원에 육박하는 대학도 있는데 그 돈으로 부동산 투기, 주식이나 파생 상품 투자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는 것은 이제는 식상한 대학의 풍경이 되었다.

학교 내에 스타벅스, 홈플러스까지 끌어들인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쇼핑몰이 들어와 대학 캠퍼스는 상업화 된 그 바깥 세상과 차별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 할 필요도 없겠다. 신자유주의의 진원이자 그 추세를 주도하는 미국에서는 - 현재로서는 일부에 국한된 현상이지만 - 대학 내 교육이 특정 대행업체에게 맡겨져 운영되고 그 업체는 강의 하나하나를 분리하여 아웃소싱 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학이 외국어나 기술을 배우는 학원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 교원은 - ‘시간강사’는 말 할 것도 없이 - 바야흐로 전적인 임금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교수가 노동자일 수밖에 없음을 옹호하는 새로운 논리가 성립되는 현상인 것이다.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한정된 재정을 특정 분야에 집중시켜야 한다는 발상은 신자유주의 이전에는 없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대학에 경영의 효율성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심어 놓았고, 그 때문에 대학 사회의 에토스는 무한경쟁으로 점철되었다. 대학은 어느덧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하는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되었고, 그 잣대 가운데 가장 우선적인 것은 취업률이다. 그 안에서 학생이나 교수는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다니는 대학 평가가 업그레이드되고 그것이 나의 취업에 보탬이 된다면 서슴없이 ‘기업 대학’을 수용하는 것이 대세다.

그 안에서 교육은 학생들의 수업권, 선택권을 철저하게 국가와 대학 당국이 박탈하고, 그러다 보니 교육이 애초 지향해야 하는 인간 계발과는 하등 관계없는 과정만이 확대 재생산된다. 교육은 대학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분야 즉 효율적 경영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기를 권고 내지 강요받는다. 지금 한국의 대학이 안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대학의 시장화 그 안에서 대학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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