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

 

안전기준의 무분별한 완화나 부적절한 변경 없도록 만전 기할 것


‘규구준승(規矩準繩)’은 옛 목수들이 사용하던 중요한 네 가지 연장을 꼽아서 이르는 말이다. 그림쇠(規, 요즘의 컴퍼스)와 곡척(矩, 기역자), 수준기(準, 수평을 재는 기구), 먹줄(繩, 직선을 긋는 줄)이 그것들이다.

이 네 가지는 목수가 바른 선과 원을 그리고, 정확한 길이와 수평을 잴 수 있게 해준다. 목수들의 그 많은 연장 중 규구준승을 유독 꼽은 것은 그것이 모든 일의 기초인 기준을 세우는 데 쓰인다는 데 있다. 규구준승에는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도’라는 다른 뜻도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이 기준과 원칙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다.

국가의 안전관리 역시 집짓는 목수의 일과 다르지 않다. 국민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첫 걸음은 안전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정부는 안전의 ‘규구준승’이라 할 수 있는 안전제도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범부처 협업을 통해 안전제도의 사각지대를 찾아 일소해 나가고 있다. 안전제도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구멍은 찾아 메우고, 약한 부분을 보강하여 튼튼하게 하는 것이 안전관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추자도 낚시어선 전복사고 당시 낚시객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아서 피해가 더욱 컸었는데, 이를 착용하지 않아도 강제하거나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중앙부처 합동으로 사회의 각 분야에서 제재수단이 없거나 있어도 미흡하여 안전수칙 위반이 반복되는 사고들을 집중 발굴하여 개선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낚시어선 구명조끼 미착용시 과태료 신설 외에도 건축물 시공자 안전의무 위반시 벌금 강화, 소방시설의 무단 폐쇄·차단으로 인명 피해시 가중처벌 도입 등 74개 과제를 개선함으로써 안전수칙 이행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월호 사고에서는 2100여개 선사(船社)를 회원으로 하는 해운조합에서 여객선 운항관리 업무를 담당하였던 것이 선박 안전운항 감독 부실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이에 정부는 안전관련 업무를 무분별하게 민간에 위탁할 경우 업무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음을 인식하고, 지난해부터 안전업무 전반에 대한 민간위탁업무 개선을 추진하였다.

우선, 선박의 운항관리를 포함하여 냉동기 안전검사, 유기시설 안전성검사 등 자기가 스스로를 감독하는 소위 ‘자기감독식’ 민간위탁 관행의 고리를 끊는 13건의 과제를 선정하여 개선한 바 있다. 이어 국민안전 관련 위탁사무 전반을 진단하고, 관계부처 협의와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82개 위탁사무에 대한 179건의 과제를 발굴하여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잘 다져진 안전제도의 기초가 훼손되지 않도록 ‘안전기준심의회’를 통해 안전기준의 체계적인 관리 기반 또한 마련하였다. 안전기준심의회는 안전기준이 신설, 변경되기 전에 그 적절성을 검토 후 등록·관리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이다.

지난해 심의회의 구성, 운영규정 제정 및 운영방안 연구 등 준비과정을 거쳐 올 하반기에는 국민안전처 소관 안전기준부터 우선 심의·등록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모든 부처로 확대하여 안전관리의 제도적 기틀을 다져나갈 계획이다. 집을 지은 후에도 언제나 새집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전문 관리자를 둔 셈이다.

앞으로도 정부는 안전 사각지대를 해소해 나가는 한편, 안전기준의 무분별한 완화나 부적절한 변경으로 인해 국민 안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여 삶의 현장에서 국민의 안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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