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효 대림산업 안전보건팀 차장

‘장자(壯者)’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의 깊은 사유를 가볍게 표현한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신나게 춤추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삶은 단조로움을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모퉁이에서 리듬을 타고 춤추는 것’임을 자각하게 하는 장면입니다.

영화는 삶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전개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이 세상의 삶에서 바로 지금(只今, Now...) 이 순간 단 한 번 눈 맞춤의 교감만으로도 마치 한 생애를 함께 체험한 것과 같은 느낌의 공유가 가능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삶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삶의 여정에서 서로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두 남녀가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처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모든 것을 교감하는 멋진 엔딩 장면입니다.(https://youtu.be/B-qMmzhlxLs)

장자는 ‘호접몽(胡蝶夢)’에서 삶을 한 바탕 꿈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의 투영인 허영(虛榮)의 ‘꿈’과 삶이 다른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삶은 본인의 의지로 선택하여 체험하는 자각몽(自覺夢)이라는 것입니다.

‘호접몽(胡蝶夢)’
昔者莊周夢爲胡蝶(석자장주몽위호접), 栩栩然胡蝶也(허허연호접야),
自喩適志與(자유적지여), 不知周也(부지주야).
俄然覺(아연각), 則蘧蘧然周也(즉구구연주야).
不知周之夢爲胡蝶(부지주지몽위호접), 胡蝶之夢爲周與(호접지몽위주여).
周與胡蝶(주여호접), 則必有分矣(즉필유분의), 此之謂物化(차지위물화). -장자 제물론(齊物論)-

지난날 내가 나비인 꿈을 꾸었는데, 나는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나비였다.
나비의 느낌에 몰입되어 내가 나인 줄 잊었는데,
문득 꿈을 깨어 떨어지니 놀랍게도 나였다.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나와 나비는 필시 분별이 있을 테니 이것을 물화(物化)라고 한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던 영화 ‘아바타’에서 단지 아바타를 운전하는 한 운전수였던 제이크의 의식이 나비족 아바타의 몸속으로 완전하게 동화되어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나비가 된 장자의 느낌을 교감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세상이지만 장자가 인식하는 세상과 나비가 인식하는 세상이 전혀 다른 모습인 것처럼 이 세상은 각자의 관점에 따라 천차만별의 다른 세상으로 변합니다.

 


‘라라랜드’는 장자의 ‘나비의 꿈’을 경쾌한 음악과 춤과 사랑으로 표현한 수작입니다.
‘위플래시’로 이 세상에 존재를 알렸던 감독은 음악을 통해 어떤 경지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어버린 것을 상기시켜 주니까”
-라라 랜드-

“꿈을 좇아가는 사람은 대가를 지불해야 해. 습관을 바꿔야 할 수도 있고, 역경을 헤쳐나가고, 실망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대가가 아무리 커도, 꿈을 찾지 않은 사람이 치르는 대가보다는 적을 거야. 꿈을 찾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날 뒤돌아보면 이런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될 테니까. ‘인생을 허비하고 말았구나’ ”
-파울로 코엘료-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서 사고(思考)합니다.
뇌과학에서 밝혀가고 있는 인간의 뇌 구조가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경험의 언어이며 나의 경험도 타인을 통한 간접 경험도, 심지어는 허구의 이야기까지 모든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작용합니다.
직접 체험한 경험에만 의존하여 인식을 넓혀왔다면 아마도 우리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리사 크론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시대정신을 공유하고 이끌어가는 좋은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서 온 세상 사람들의 의식을 연결하는 일종의 웜홀(worm hole)을 형성합니다.
영화는 가장 적은 비용과 시간을 통해 대중이 함께 공유하는 한 생애의 체험과 같은 이야기이고, 그 체험을 통해 대중의식이 함께 변화합니다.
우리 시대에 좋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멋지고 희망적인 일입니다.

Bravo our life in the dream(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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