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티 리더스

 

오늘날 ‘안전제일(safety first)’이라는 용어는 안전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일상적인 말이 됐다.

이제 ‘안전제일’은 하나의 구호를 넘어 기업이나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가치이자 신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치를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이는 1900년대 초 미국의 US 철강회사(U.S. Steel Co.)를 이끌었던 게리(E. H. Gary) 사장이다.

1846년 10월, 시카고 휘튼의 교외에서 태어난 게리는 1868년 유니언컬리지 법대(현 노스웨스턴대 로스쿨)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870년부터 1880년까지 시카고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게리는 시카고에 기반을 둔 수많은 철도회사의 기업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1894년에는 시카고 사법시험협회의 회장도 역임했다.

게리와 철강산업과의 관계는 미국 철강회사연합 사장으로 임명된 1890년 말부터 시작된다. 이후 게리는 1901년 54세의 나이에 휘튼에서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며 U.S Steel의 사장으로 부임했다.

게리가 이끄는 U.S Steel은 일리노이주의 시카고 동쪽에서부터 펜실베니아주의 머농거힐라 계곡에 이르는 공장들을 아우르는 대규모 철강트러스트를 구축할 정도로 성장했으나 적잖은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산업재해였다.

그의 취임초기 U.S Steel의 경영방침은 ‘생산제일, 품질제이, 안전제삼’이었다. 경영의 후순위인 안전은 방치됐고, 그 결과 설비의 노후화로 인하여 수많은 재해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를 개선해보고자 게리 사장은 1906년 경영방침을 안전제일, 품질제이, 생산제삼으로 변경했다.

그러자 예상치 못했던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재해가 줄어든 것은 물론 품질과 생산성도 증대된 것이다. 게리가 불러온 결과는 미국과 세계 각지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12년 시카고에 국민안전협회가 창립되었으며, 1917년에는 런던에 안전제일협회가 탄생됐다.

박애주의자였던 게리는 4만권이 넘는 책을 노스웨스턴 대 법대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는 나중에 뉴클레우스 도서관이 만들어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 게리는 1926년 7월 타임지(Time Magazine)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당시 타임지는 게리를 지난 25년 간 미국의 가장 저명한 기업지도자였다고 경의를 표했다. 게리는 81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사망했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