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

(이미지 제공: 뉴시스)

 


2월 4일은 스리랑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이다.

1796년 동인도회사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여 1948년에 와서야 독립을 했으니, 무려 150년 정도의 긴 기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독립 후 스리랑카는 천혜의 여러 조건을 바탕으로 하여 아시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가운데 으뜸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두 개의 큰 종족 집단 간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나라가 기울었다.

지금은 40년에 걸친 내전이 끝나긴 했으나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다보니,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두 종족 집단의 갈등은 영국인들이 토착민인 싱할라족과 인도 남부 타밀지역에서 건너온 타밀 사람들을 이간질하면서 통치하는, 이른바 분리통치(Divide & Rule) 전략을 추진한 것에서 비롯됐다.

근대적 의미의 민족 개념이 희박했던 스리랑카에서 하나의 정치적 개념인 민족의식을 형성시키기에는 종교를 활용하는 방식이 가장 적합하였다. 그래서 그것은 불교와 쉽게 연계되었다. 서구 근대주의와 기독교에 대한 반발로 싱할라족 사이에서는 불교 개혁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서서히 민족주의로 발전해 나갔다. 반면 그 시기 타밀 사람들 사이에서는 힌두교 개혁 운동을 기반으로 한 힌두 민족주의가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스리랑카 민족 지도자들의 요구가 커지는 동안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전세가 급한 영국은 스리랑카 민족 지도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자치를 허용하겠다는 약속을 미끼로 전쟁 참여를 요구하였다. 민족 지도자들은 참전을 하였으나, 전쟁 종료 후 영국은 높은 수준의 자치를 허용하지 않았고, 반대로 민족 진영 인사들을 투옥하는 등 탄압으로 일관하였다. 이후 민족 운동은 불교-싱할라 민족운동으로 성장하였고, 그러면서 그 힘은 갈수록 커져갔다. 격화되는 민족 운동을 조직적으로 운영하고 통제 가능한 운동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하나의 정당이 조직되었다. 1919년 설립된 실론국민회의(Ceylon National Congress)라는 정당이 바로 그것이다.

스리랑카의 민족 운동이 점차 거세지자 영국은 불교 공동체와 힌두교 공동체로 나눠 이간질을 하였고, 민족 진영은 그 분리 통치 정책에 통합으로 맞서 싸웠으나 그 분란은 갈수록 커져갔다.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영국은 민족 진영의 자치 요구를 더 이상 묵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통치법을 공포해 대의제 도입과 보통선거 실시와 같은 참정권을 인정하는 등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하였다. 참정권이 확대되자 일부 상층 엘리트에게 한정되어 있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일반 국민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영국 식민 세력이 도입해 준 입법참사회와 국가평의회는 대부분 서구화된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운영된 교육기관에서 서구 교육을 받음으로써 서구 문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따라서 싱할라의 문화 특히 불교에 대하여 왜곡된 인식을 하였으니 불교 승려들은 세속적 일 특히 정치 운동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주로 하였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반발이 싱할라족 다수 사이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불교 교단이 정치에 간여하기 시작했다. 힌두교 공동체와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불교 세력이 민족 운동에 적극적으로 주도권을 쥐자 영국 식민주의자들은 힌두 세력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민족 운동을 약화시켰고, 그 와중에 영국 세력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매판자본으로 성장한 타밀 출신의 힌두교도들은 싱할라족 불교도들에게 ‘우리’가 아닌 ‘적’이 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식민주의가 심은 분열의 씨앗이 나중에 스리랑카 내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아시아의 신생 독립국 가운데 한국만큼 식민주의 유산을 잘 극복한 예는 찾기 어렵다. 종교나 언어 혹은 민족으로 갈라서지도 않았고 그것으로 씻을 수 없는 갈등에 휩싸이지도 않았다. 다만 외세의 부당한 강제 때문에 억지로 분단이 되어서 고통을 받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또한 한국인의 역사의식 수준으로 보면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헌법을 유린하고 부정부패를 일삼고 국정을 농단하며 사회 정의를 폐기하는 세력들이 자꾸 국민들을 이간질 시킨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 일부 극우 세력들이 하는 짓을 볼 때는 앞으로 상당히 위험해질 수도 있다 싶을 정도로 우려가 된다. 하루 빨리 국정을 바로 잡아 우리 국민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할 때다. 적어도 꽃 피는 3월이 되면 바야흐로 정상적인 나라가 세워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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