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예방 위해선 ‘원청·발주자 책임 강화’, ‘근로자 참여 활성화’ 필수


안전감독 기능의 부재가 문제…산업안전보건청 설립해 감독 현실화 해야
장시간 근로로 인한 뇌·심혈관 질환자 심각 수준, 과로사 방지법 도입 시급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일과 건강’은 지난 3일부터 4일까지 이틀 동안 서울 가톨릭청년회관에서 ‘2017 노동자 건강권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지난해 사회적으로 이슈화됐던 구의역사고, 메탄올 중독사고 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원청의 책임강화, 근로자의 안전보건활동 참여방안 등에 대해 논의를 했다. 또 과로사 방지, 초단시간 근로자 근로실태, 최근 산재판례 동향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의견을 나눴다. 다음은 이날 논의된 근로자 안전보건관련 주요 이슈 사항을 정리한 것이다.

◇메탄올 중독사고 증가…원청·사업주 책임 강화해야
포럼에서 김현주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메탄올 중독 사건으로 본 안전보건’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김 교수는 “지난 1~2월 경기도 부천과 인천에 소재한 핸드폰 부품 생산 사업장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5명이 CNC 절삭 및 검사작업 중 고농도 메탄올 중기를 흡입해 실명하는 등 최근 몇 년간 메탄올 급성중독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라며 “소규모 사업장, 하청업체, 불법파견 노동자 등 산업안전보건법이 여전히 작동하지 않는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행법은 산업재해 발생 시 원청 책임자보다 해당 사업장의 안전관리자를 우선 처벌하고 원청에 대한 벌금 수준도 약해 기업들의 불법행위를 억제하는데 한계가 있다”라며 “사업주·원청의 책임강화, 유해작업 도급금지, 소규모 사업장 지원 활성화 등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법·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1차, 2차, 3차 하청 사업주, 고용사업주 등 잘못이 있는 사업주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한편 산업보건기초서비스 비용지원 확대, 3자 지불제도 도입 등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의역 사고는 총체적 문제…노동안전보건청 필요
박두용 한성대학교 교수는 ‘구의역 사고로 본 안전보건 문제와 대안’을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박 교수는 서울시가 구성한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박 교수는 “구의역 사고는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안전, 노동조건 등 어느 한 부분을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우리사회가 가진 총체적 문제”라며 “위험은 원청에서 생산하고 피해에 대한 책임은 하청업체 그리고 그의 하청업체가 책임지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구의역 사고는 노동안전감독 기능의 부재 내지는 미작동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국가책임 행정기관으로 노동안전보건청 또는 산업안전보건청을 만들고 노동안전경찰을 늘려 노동안전감독을 현실화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직개편과 법·제도 개선 등을 통해 원청과 하청업체가 상생할 수 있는 사회적인 구조와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구제할 수 있는 국가적 시스템의 구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발주자 책임 강화…안전보건대표 제도 도입해야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건설업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발주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가운데, 근로자 대표가 안전활동에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최근 10년간 건설업에서 하루 평균 57명의 재해자가 발생하고 이 중 2명이 사망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2.6배, 영국의 7.7배에 해당하는 수치”라며 “2012년 기준으로 건설업 사망재해 발생형태는 떨어짐, 맞음, 무너짐 등 후진적 재해가 전체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지만, 공사 발주자에 대한 책임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영국의 CDM(Construction Design Management)을 보면 발주자, 시공사, 근로자 등은 재해예방을 위해 서로 협의할 의무가 있으며, 특히 발주자는 프로젝트 시작부터 끝까지 안전위험 요소를 통제하고 계획, 설계, 시공단계에 걸쳐 안전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라며 “그 결과 CDM 적용 이후 6년간 재해사망만인율이 40% 가량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임 소장은 “우리나라는 안전관리시스템 미비, 안전관리비 부족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건설재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처벌은 시공자에 집중되어 있다”라며 “발주자가 주도하는 안전관리 프로그램 아래 설계자, 근로자 등이 동등하게 협력할 수 있는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안전관리체제시스템 구축을 위해 근로자의 적극적인 참여도 언급했다.

임 소장은 “독일, 스웨덴, 영국 등은 안전보건대표 제도를 통해 근로자의 권리를 집단화하여 작업중지 권한, 안전위원회 참석 등 안전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라며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발주자에 대한 법 집행과 함께 근로자의 참여가 절실한 만큼 안전보건대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단시간 근로자 증가…임금은 오히려 감소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부가조사(2002~2015년)’에 따르면 초단시간 근로자의 연평균 증가율은 9.2%로 일반단시간 근로(7.6%), 전일제 근로(2.2%) 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성별로는 지난해 여성(41만1307명) 초단시간 근로자가 남성(17만4146명)보다 2.4배 많았으며, 이는 2002년에 비해 여성과 남성 각각 3.4배, 2.6배 증가한 수치다. 특히 중졸 이하 저학력의 고령층 여성이 가장 많았다. 근로형태별 월평균 임금을 살펴보면 전일제 근로자는 매년 임금이 상승했지만 초단시간 근로자는 오히려 2002년 55만원에서 2015년 30.1만원으로 하락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초단시간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 관련 법률에 명시된 예외조항에 의해 주휴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4대 보험 등에서 배제되고 있다”라며 “이처럼 초단시간 근로자가 노동법에서 보호되지 않는 가운데, 저학력 고령층 여성을 저렴한 노임으로 이용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하면서 초단시간 노동시장이 더 열악해졌다”고 지적했다.

◇‘30분배달제’…근로자만 피해자로 전락
‘배달·배송 아르바이트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41.7%가 ‘제한시간 내 배달 완료를 위해 무리하게 운전’을 하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배달 1건 당 평균 소요 시간을 알아본 결과 ‘10~20분 미만’이 47.7%에 달해 1위를 차지했고, ‘10분 미만’(26.4%)이 2위에 올라 전체 74.1%가 2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배달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즉, 상당수 배달원이 총알 배달로 인한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이성종 민주노총서비스연맹 정책실장은 “배달 근로자에게 가장 다발하고 있는 교통사고는 근로자 과실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기업들의 영업방침에 기인해 발생하고 있다”라며 “특히 패스트푸드업계의 ‘30분배달제’ 등 과다경쟁 시스템 속에서 근로자만 피해자로 전락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산재보험을 회피할 수 없도록 고용부가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가운데, 근로기준법령을 개정하고 필요시 지자체별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라며 “기업들이 보험료 부담을 이유로 산재보험 가입을 회피한다면 보험적용 방식도 고려해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리운전 근로자들이 건수별로 보험을 적용하는 방식처럼 배달근로자들도 배달건수별로 보험을 적용하여 사업주가 부담하는 산재보험료를 적정하게 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덧붙였다.

◇과로관련 산재인정 기준 마련해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5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사업장 236만7186개소에서 종사하는 근로자 1796만8931명 중 업무상질병 환자는 7064명이며, 이 중 장시간 근무가 주원인인 뇌·심혈관 질환자는 341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뇌·심혈관 질환은 지난해 업무상 질병에 의한 사망자의 34.2%로, 전체 2위를 차지했다.

뇌·심혈관계 질환에는 만성 과로로 인한 뇌경색, 심근경색증, 뇌실질내출혈, 지주막하출혈, 해리성 대동맥류 등이 포함된다.

OECD가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전체 취업자의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2228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OECD 회원국 연평균 근무시간(1770시간)보다 354시간 긴 수치로 하루에 평균 1.2배 더 일한 셈이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는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노동시간 규제 자체를 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운수업 등 특례 업종의 경우 장시간 노동이 무한정 허용되고 있다”라며 “이는 과로사 예방법제로 작동해야할 산안법, 근로기준법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에 의한 과로 자살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살을 과로사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으며 그 실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유 노무사는 “현재 일본은 2014년 ‘과로사방지법’을 제정하여 실행 중이며 과로사 방지를 위한 다양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라며 “우리나라도 다양한 유형의 과로사 사례를 유형화하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합리적인 산재인정 기준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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