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헌법상으로 보나 정치 구조로 보나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이 작동하는 수준을 보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보기는 매우 힘들다.

민주주의를 훼손하고자 하는 자가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삼권분립을 무력화시키거나 욕보이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제도의 문제 위에서 전혀 자질이 되지 않는 심지어는 철저히 민주주의에 반하는 정치인이 버젓이 권력을 독점하고 사유화하여 나라를 망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뜻은 전혀 존중되지 않는다. 시민의 뜻을 반영하는 것은 민주주의 제1의 원리다. 그 체제의 요체는 의회이다. 그런데 의회 구성이 그 자체로서 이미 비(非)민주주의적이다. 선거에 있어서 표의 등가성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정당은 아직도 지역주의에 기반하고 있어 시민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개 시민과 그들이 속한 공동체가 큰 위기를 겪고 특히 그런 상황이 오면서 사회의 약자만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는 것은 이미 이 사회의 상수(常數)가 되어 버렸다.

시민이 광장에 존재하지 않게 된 데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횡행이다. 1997년 소위 IMF 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급속히 신자유주의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서 약자에 대한 핍박과 빈곤의 대물림, 강자의 횡포와 부자의 착취, 불공정 경쟁과 노동의 무시, 체념과 포기의 만연 등은 이 사회를 지배하는 흔들리지 않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약자는 의지할 그 어떤 사회 안전망도 갖지 못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굴종 아니면 자살밖에 없게 되었다. 그들은 각자도생만이 이 정글 같이 험한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게 되었고, 그 안에서 가진 자와 강자에 포섭되거나 순응하는 것을 삶의 방식으로 택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엿한 시민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하는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그것을 관철하려 사회 운동이나 정치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타의에 의해 공동체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 위에서 시민 사회는 소위 부르주아를 포함한 상층 계급만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소외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는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각종 선거에 표를 던지는 것이다. 그것조차 얼마나 자신의 의지와 목표에 따라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내용이 어떻더라도 그들이 시민으로서 행할 수 있는 최대의 권리가 오로지 투표밖에 없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그 투표의 결과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시민권을 스스로 박탈시키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자신이 왜 투표를 하는지, 투표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왜 내야 하는지, 그 목소리를 내려면 어떻게 상황을 인식해야 하는지를 거의 알지 못한다. 그들은 특정 후보의 정책이 자신에게 어떤 이로움을 주는지에 대해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후보자 선택의 기준은 여전히 봉건 사회와 권위주의 정부가 만들어낸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지역패권주의, 소지역주의, 노인 집단주의 등에 함몰되어 있다. 수십 년 간 맹목적으로 따라가다 보니 고착화된 충성주의의 결과다. 그 안에서 건전한 개인이라는 것은 성장할 수 없다. 시민 의식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