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숙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안전보건연구소 본부장

산업안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정부와 산업현장간의 원활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산업현장내의 산업안전에 있어서도 경영자와 근로자들간 원만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노동조합(노동단체)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경영자와 근로자들 사이를 조율하는 것은 물론 정부와 산업현장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때론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 근로자들을 대변하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본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동단체 중 하나인 한국노총의 안전보건연구소를 찾아가봤다. 그리고 이곳에서 정영숙 본부장을 만나 최근 한국노총의 안전보건 정책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안전을 접하시게 된 계기는?

 

주로 여성업무나 조직업무 등을 담당하다가 5년 전에 안전업무로 발령이 나면서 그때부터 안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아무래도 안전보건 업무가 전문분야가 아니다보니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전문가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에 충실하자’는 목표를 세우게 됐고, 이후 관련 업무에 본격적으로 매진을 하게 됐습니다.

Q. 우리나라에서 유독 발전이 더딘 분야가 산업안전 분야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과거부터 빠른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안전보건 분야는 늘 뒷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IMF 사태 때 기획규제완화특별조치법으로 인해서 규제가 많이 풀리는 등 점차 강제성이 덜해져가면서 안전보건의 발전이 더욱 늦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노동조합들 역시도 분배 쪽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근로자들의 건강문제에는 다소 등한시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다보니 지금까지 사업주의 의식, 즉 성장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고착화된 경향이 있습니다. 경제가 빨리 회복이 됐으면 이 부분도 개선되어야 하는데 현재 보면 그 개선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정부와 현장의 인식 차이도 너무 벌어져 있다는 점에서 생각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위의 질문과 관련해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부분을 지적해주신다면?

산재를 당하면 그 근로자뿐만 아니라 한 가정 자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족 전체의 고통이라는 것은 한 가정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이를 사회적인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식 자체를 바뀌게 하는 것이 산업안전 분야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Q. 한국노총에서 안전과 관련해 중점 추진하고 있는 사항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노총에는 대기업보다 중소영세업체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역본부와 연맹 모두에 전문적으로 안전을 하는 담당자가 별로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현장별로 단위조합에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노동 간부가 한 명씩이라도 있다면 안전보건 문제가 좀 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겠나 생각하고 ‘안전지킴이’라는 명칭의 안전보건관리자를 만들어내는 일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전문가 과정 등의 교육을 지역을 돌면서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전국 16개 시도 모두 했을 정도로 성과가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현장의 인식을 바꿔나간다는 취지로 안전담당자들에 대한 교육사업 만큼은 중점 추진 사업으로 삼고 꾸준히 추진해나갈 계획입니다.

아울러 우리 한국노총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과 100인 미만 사업장을 구분하여 기술지원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노동계에서 하는 것이라 좀 그렇지 않을까하는 시선들이 있었는데 막상 실시해보니 사업주들 사이에서 호응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특히 비노조 사업장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예산이 허락되는 한 현장기술지원을 계속해나가고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사업장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그 대상도 점점 늘려나갈 방침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외국인근로자들에 대한 안전보건 지원을 해주는데도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3D업종의 대부분을 외국인근로자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외국인근로자들의 작업환경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취약합니다. 안전보건교육을 한 번도 못 받아봤다는 사람들이 태반인 것은 물론 보호구 쓰는 것조차 잘 모르고 있는 사람도 너무 많습니다.

이런 실상을 반영해 우리 한국노총에서는 안전화와 귀마개, 방진마스크 등을 무료로 나눠주고,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사업(외국인근로자 돌봄근로자제도)을 지역과 연계해서 펼치고 있습니다. 벌써 5년째에 접어들었는데, 이 사업 역시 내년에도 차질 없이 추진하도록 준비해나갈 계획입니다.

Q. 위 사항에 덧붙여 내년에 중점적으로 추진해나갈 사항을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산재근로자와 관련한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방침입니다. 현재 산재근로자의 경우 재활문제, 업무 복귀 문제 등 다양한 부분에서 정책적 보완사항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 제도적인 측면을 보완하려 하고 있으며, 산재인정여부를 판단하는 질병판정위원회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정책적으로 연구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 무의탁 노인이나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요양보호사 사업에 대해 올해 실태조사를 해봤는데 이 역시 너무나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요양보호사의 경우 휠체어와 함께 넘어지는 등의 산재사고는 물론, 노인들을 목욕시키고, 빨래나 집안일을 직접 하다보니 근골격계질환도 굉장히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실질적인 예방이나 지원책은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앞으로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해서 이에 대한 보완대책을 마련해나갈 방침입니다.

아울러 올해 발암물질 관련 업무를 수행해봤더니 사업장의 발암물질에 대한 관리실태 또한 매우 허술한 상황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MSDS(물질안전보건자료) 자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습니다. 이는 MSDS라는 용어 자체가 어려운데다가 이를 정확하게 교육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 물질이 눈에 들어가면 눈에 어떤 이상이 생기니까 몇 분 안에 씻으라’는 식으로 설명해놓거나 교육을 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이 부분은 생략된 채 그대로 게시만 되면서 근로자들의 관심이 적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해당 물질의 위험성과 대처방법에 대해 대대적으로 교육을 시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노총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서 추진해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전예방은 노사가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공동의 문제인 만큼, 기존의 근로자들 위주의 교육형태를 벗어나 앞으로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참여하는 형식으로 안전교육을 진행해볼 계획입니다. 이는 내년도 추진 사업으로 현재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있는 중인데 합의가 잘 되면 내년에는 노사 공동교육으로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Q.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측면에서 가장 개선이 시급한 부분이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무엇보다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크게 강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사실 법 자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봐도 크게 미흡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법이 처벌에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도 분명 있긴 하지만 사실상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으로 그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태료가 강하게 부과되지도 않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법 안에서라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하는데, 실제로 관리감독할 수 있는 인원이 300명 수준으로 크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 인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지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일부 대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율경영체계를 전국 사업장에 도입하려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자율경영체계로 가는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실제로 자율경영체계를 시행하고 있는 대기업은 중소영세기업과 비교해 볼 때 격차가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안전관리를 매우 잘 운영해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자율경영체계가 제대로 안 될 때는 과감하게 과태료를 물리든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업주가 산업안전에 대해서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것과 연관이 될 수 있겠지요.

Q. 그밖에 안전과 관련해 꼭 개선해야 하는 부분을 짚어주신다면?

원청과 하청이라는 상하간의 산업구조에도 근본적인 해결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하청과 협력사 등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조가 워낙 산업안전에 대한 요구를 하니까 산재가 일어날 수 있는 분야는 협력업체에 떠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산재예방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더 많은 산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지요. 상황이 이런데도 이를 규제할 방법이 현재는 없습니다. 정부가 그런 부분들을 잡아줘야 하는데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지 않으면 산재사고는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 문제까지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겠지만 안전보건에 대한 것은 원청이 책임지는 구조로 바꿔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산업안전과 관련해서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사안이 있으시다면?

비정규직과 50인 미만 사업장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시스템이 아직까지 미흡하다고 보여집니다.

현재 정책마련은 고용노동부가, 집행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하는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공단의 인력이 겨우 1,200~1,300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정책이 정해지면 그 인원들이 단기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시스템이어서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일을 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분명 정책 수행에 있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정부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식업이나 서비스업 등 최근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는 업종의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서는 정부의 장기적인 대책 마련과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산업안전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전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분야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몇 배는 더 일하는 것 같은데도 평가나 대우는 타 업종에 비해 그리 좋지도 않고, 잘해야 본전이라고 할 정도로 업무의 성과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래도 안전에는 분명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안전에 대한 산업현장의 인식들이 조금씩 변하면서 안전보건에 무게를 실으려 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역시도 노동운동의 중심을 안전보건에 둬야 한다는 주장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변화의 조짐들이 보이고 있으니까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이 일은 사명감과 자부심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게는 근로자의 건강이지만 나아가서는 전체 국민의 건강문제를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임해주신다면 훨씬 더큰 자부심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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