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

 

항상 계절의 이치가 그렇듯이, 역시 여름은 지독한 염천 불더위여야 제 맛이 난다.

섣불리 밖에 나가지도 못하다 보니 게을러질 수 있기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는 것도 좋고, 그것과는 또 달리 조금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그동안 읽지 못했던 고전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도 좋다. 아무래도 날이 너무 덥다 보니 운동하는 시간도 줄어들 것이고, 술 약속도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으름과 책 읽기, 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 한 환상의 이번 여름을 고전 읽기로 돌파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도 개인적으로 몇 해 전에 그렇게 여름을 보낸 적이 있다. 최근에 운명을 달리 한 소설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 책 좀 읽었다 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마디씩 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소설, 그러나 평생 잊을 수 없는 그 깊이라는 그 책을 여름 두 달 동안에 읽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 시간을 그리워하며 산다.

여름, 그 독한 시간에 독하게 마음먹고 책을 읽으려면 기왕이면 고전을 읽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 고전이라는 게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아니, 그냥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잘못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몇 가지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우선, 고전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것은 읽는 내 자신이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을 때 그것은 고전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유용하고, 삶에 표준화 된 지침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고전이 아니다. 고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그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지혜를 받아올 수 있는 그치지 않는 샘과 같은 것이며, 그것을 접한 기억이 평생 오래도록 갈 수 있는 기억의 터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고전이라는 게 누구나 그리 쉽게 그 지혜를 얻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선 그 고전 또한 어떤 특정 시대의 산물인데 그 시대의 세계관이 이미 낡고 위험한 것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 고전이다. 세계의 고전이 다 그렇지만 특히 그리스 고전은 그리스 특유의 역사 인식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세계관은 지금 우리가 지향하는 인권과 세계 시민 의식에 너무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서양의 세계관이라는 것이 대부분 오리엔탈리즘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때에는 거의 모든 사상가들이 다 그러하였는데, 나중에 근대로 들어오면서 인종주의로 발전한다. 고대 중국이나 인도에서도 자기들이 사는 세계를 중심으로 보고 바깥에 사는 민족을 야만인으로 폄하하는 것은 있기는 하였으나 서양과 같이 편협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고전들을 읽을 때는 전문가들의 지도에 따라 읽는 것이 필요하다.

근대 철학자이지만, 그의 사유의 모든 면이 지금 이 시대와 맞는 것이 아닌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칸트나 헤겔의 경우다. 그 둘의 철학이 매우 뛰어난 것임은 부인할 수는 없으나 그들이 모든 면에서 지각 있는 사유를 한 것은 아니다.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흑인종과 백인종의 차이는 본질적이며 그것은 피부색에서와 마찬가지로 심성의 역량에서도 크게 나타난다 ... 그들은 요상한 말로 지껄이기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분명 매질만이 그들을 서로 흩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임마누엘 칸트, 1764.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

그래서 고전을 읽기 전에 우선 철학 공부를 먼저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철학 공부가 부족한 상태에서 고전을 쉽게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철학 공부를 하기 전에 사실은 그 세계의 역사를 먼저 공부할 필요가 있다. 철학이든 사상이든 종교든 이데올로기든 그것이 나온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역사 공부를 할 때 또 하나 갖추어야 할 자세로는 서양사 위주의 공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루 이해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그리고 두루 읽는 것은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읽는 것이 필요하다. 고전을 읽는 것이 자신을 과신하거나 남에게 뻐기거나 뭔가 돈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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