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생 수원 정자초등학교장 (WHO 공인 국제안전학교)

10여년째 정체를 거듭하고 있는 산재율,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후진국형 대형재해, 과속·음주로 얼룩진 도로 등은 감출 수 없는 우리나라 ‘안전’의 현 주소다.

이 부끄러운 모습을 지우기 위해 그간 정부는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고, 현장의 안전인들은 발로 뛰며 안전을 외쳤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재해의 원인으로 꼽히는 안전불감증이 조금의 위축도 없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저명한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근원적인 해법으로 조기안전교육을 제시하고 있다. 어린 시절 확고히 자리매김한 안전의식만이 우리나라의 안전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본지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국내 최초로 국제안전학교 공인을 받은 수원 정자초등학교의 임종생 교장을 만나 우리나라 조기안전교육의 현황과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Q. 학교와 교장선생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 학교는 1990년 개교를 하여 올해로 꼭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현재는 44학급으로 편성돼 있으며, 저를 포함해 70여명의 교직원이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학생 수는 대략 1,500여명 정도입니다.

저는 이곳에 지난 2006년 9월 제6대 교장으로 부임하여, 그간 안전과 독서, 친환경 등에 중점을 두고 학교를 이끌어왔습니다.

현재는 저의 뜻에 적극 동참해준 선생님들과 학부모, 학생들의 노력에 힘입어 해당 분야에서만큼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명문학교가 됐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Q. 국내 최초로 WHO로부터 국제안전학교로 지정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 학교에 부임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수원시가 2002년 아시아 최초로 국제안전도시로 공인을 받은 상태였는데, 당시 시 각층에서 안전도시인만큼 도시 안에 안전학교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조금씩 대두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수원시가 그해 말 국제안전학교 공모를 냈고, 저희 학교가 국제안전학교 시범 운영 학교로 선정이 됐습니다.

이후 우리학교는 수원시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아주대 산학협력단, 경기도교육청, 아시아안전도시학회, 세계안전도시학회 등 내외부 기관과 활발한 교류활동을 하며 국제안전학교가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2008년 10월 세계에서는 18번째,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국제안전학교로 공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Q. 안전학교와 비안전학교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처럼 안전을 특화한 학교에서만 안전교육 및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는 각 학교의 특성과 역량을 감안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단지 차이점은 저희 학교의 경우 일반학교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안전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저희 학교에서는 현재 손상예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학생들이 입는 손상 원인을 과학적으로 관리·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즉각적인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기본적인 시스템은 이렇습니다. 각 교실 내에는 교실배치도, 교외공간 구조도 등이 그려져 있는 손상현황판이 설치돼 있습니다. 해당 반의 선생님과 학생들은 사고를 입게 되면 이 현황판에 어디서 다쳤고, 어디를 다쳤는지, 또 다친 이유가 무엇인지를 즉시 표시합니다.

특히 보건실에서 치료가 진행된 손상정보는 ‘일일 손상 기록지’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아진 자료는 웹 손상분석프로그램을 통해 데이터베이스화됩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년, 날짜, 유형, 특성별로 손상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그래프 형태로 비교 분석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월 말 학년별 교사들은 이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회의를 진행해 사고예방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게 됩니다.

Q. 시설에 대한 개선 및 안전교육 등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시설개선활동 및 안전교육의 경우 1차적으로는 손상분석프로그램에 따라 분석된 자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분석자료를 통해 학기 초에는 새 책과 학용품 등으로 인해 다치는 학생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5~6월에는 운동 등 체육활동으로 인해 부상을 입는 학생이 많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 나무로 된 교실바닥으로 인해 가시찔림 등의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도 알 수 있었으며, 사고가 주로 발생하는 특정 위험장소들도 대부분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를 토대로 학기 초에는 학용품의 올바른 사용법을 중점적으로 지도하고, 5~6월에는 안전한 체육활동방법을 알려주는 등 사고의 특성에 부합하는 맞춤형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고의 발생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 교실바닥은 모두 안전한 재질의 바닥으로 전면 교체했고, 운동장은 인조잔디 구장으로 바꿨습니다.

Q. 위 질문에 더해 현재 실시 중에 있는 안전교육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전교육 및 활동은 각 학년별 수준에 맞춰 이뤄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집중력, 흥미도, 이해력 등을 고려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지요.

먼저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는 유괴·범죄예방교육,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1~3년까지의 저학년에게는 교통안전교육, 미술심리교육, 의사소통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위생교육, 심폐소생술교육, 소방안전교육, 식품안전교육, 전기안전교육 등 보다 구체적이고 난이도가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교육을 철저히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산업현장에서의 교육도 그러하겠지만 안전교육은 교육을 받는 대상자가 스스로 그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바탕으로 실천에 옮길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저희는 모든 교육을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경험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조기안전교육이 안전불감증 타개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조기안전교육이 우리사회에 고착화된 안전불감증을 일시에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장 적절한 해법 중 하나라고는 확신합니다.

조기안전교육의 장점은 교육의 효과를 무궁무진하게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1차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등 안전의식을 확고히 심어줄 수 있습니다.

2차적으로는 가정에 안전문화를 퍼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학교의 경우 수시로 학부모 정신건강 강좌 등 학부모들이 안전과 관련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시행하고 있습니다. 또 안전일기, 안전작품만들기 등의 과제를 통해 학부모들도 아이들의 안전의식 형성에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유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참여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안전을 말해야 하는 학부모가 과연 불안전한 행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못할 것입니다.

또 이들 학부모는 학부모이면서 산업현장에서는 근로자인 분들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안전을 계속 접하게 된다면 분명 현장에서도 안전하게 일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조기안전교육은 지역사회의 안전네트워크를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이나 활동의 경우 학교 자체적으로 하는 것도 있지만 지역의 소방서나 경찰서, 대학교, 병원 등과 연계해 실시하는 교육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처음에는 저희가 부탁을 드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연중 계획을 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활성화가 됐습니다. 학생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소방서가 나서고, 경찰서가 나서고, 대학교가 나서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기안전교육에는 지역사회의 안전역량을 한데 집중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습니다. 이를 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체계적으로 제시된다면 분명 안전불감증 해소에 큰 돌파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선진국의 조기안전교육 수준과 우리나라의 수준을 비교한다면?

선진국의 안전교육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미국, 일본 등 다양한 선진국을 방문해 본 결과, 교육과정과 교육의 질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오히려 저희가 더 우수한 면도 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선진국은 안전교육을 하기 위한 토대가 잘 구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 학교를 지을 때 처음부터 학생들에게 위험요소로 작용할 부분을 철저히 따져 짓고 있습니다.

또 건물의 구조 형태도 우리나라처럼 획일적인 ‘ㅡ’자 형태가 아니라 ‘ㅁ’자 등으로 지어 교사들이 교내 어디서나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가 배워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정부나 지자체 등에 건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으시다면?

아직 우리나라 조기안전교육의 저변은 척박한 편입니다. 국제안전학교 공인을 준비할 당시 저와 저희 학교 선생님들은 우리나라에 사례가 없어 숱한 고생을 하였습니다.

해외 곳곳에서 열리는 안전관련학회의 행사를 찾아다니며 배움을 얻고, 이를 힘들게 이 땅에 심었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지금의 탄탄한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지요.

이같은 노력의 결과 이제는 우리나라 각지의 초·중·고교는 물론 안전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일본의 학교에서까지 저희 학교를 벤치마킹하러 오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금 저는 저희 학교의 안전교육체계가 우수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이런 체계를 갖춘 학교가 더욱 늘어나야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수한 안전교육을 펼친다한들 그곳이 2~3곳에 불과하다면 그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나서 체계적인 안전교육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전국의 교육현장에 보급했으면 합니다. 이런 체계가 구축이 된다면 안전문화는 보다 빠르게 그리고 튼튼하게 우리사회에 스며들 것입니다.

저 역시 제 모든 역량을 다해서 안전문화가 확산되는데 이바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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