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한 씨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주택가의 한 세탁소. 겹겹이 지어진 빌라촌에 가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외진 곳임에도 이곳엔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빽빽이 들어찬 세탁물, 간간히 증기를 뿜어내는 다리미, 쉼 없이 돌아가는 세탁기 등 아무리 둘러봐도 여느 세탁소와 다를 바 없는 곳이다. 그런데 왜 손님들로 항시 북적이는 것일까? 그 해답은 손님들이 알려주었다. 바로 이곳 사장 때문에 온다는 것이다.

이곳 사장 김도한(42)씨는 젊은 시절 산재를 입어 왼손을 자유로이 쓰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장애를 이겨내고 세탁과 수선실력에선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기술자가 됐다.

그를 만나 산재를 딛고 다시 세상에 우뚝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왼손을 잃다

2001년, 김도한씨는 경북 구미에 소재한 모 사무자동화기기 생산공장에 재직 중이었다. 당시 그가 맡은 일은 사출기계에서 금형을 찍어내는 일이었다.

사고가 난 그날도 그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사출기계에 문제가 생겼다. 찍어낸 금형이 기계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 이럴 때에는 기계의 작동을 멈추고 직접 손으로 금형을 빼내야했다.

다소 위험이 있는 일이긴 했지만 이 기계의 경우 본체 문을 열면 작동이 멈추는 안전기능이 장착된 기계였기에 그는 아무 의심 없이 본체의 문을 열고 걸려 있는 금형에 손을 댔다.

그때였다. 당연히 멈춰있어야 할 기계가 작동을 했고, 순식간에 그의 왼손이 기계에 찍혔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손을 빼내었지만 이미 모든 상황이 벌어진 후였다. 손가락 대부분이 뜯긴 채 너덜거리고 있는 왼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다시 찾은 희망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직후부터 1년간 배와 엉덩이 등지의 살을 떼어오고, 몸 이곳저곳의 혈관을 떼어다가 손가락에 이식하는 수술이 수차례 시행됐다. 그 결과 그는 3개의 손가락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중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은 엄지밖에 없었다. 새끼손가락과 약지는 움직이기는커녕 감각도 거의 없었다.
서른세살 한창 나이에 평생 불구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는 자살 시도만 2번을 했다.
그러나 명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그저 살 수밖에 없어 살아야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여를 외부와 철저히 차단한 채 작은 방안에서 보냈다. 그러던 차 그는 산재종결처리 문제와 관련해 근로복지공단 구미지사를 방문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대기실에서 상담 순서를 기다리며 공단의 홍보비디오를 보고 있었는데, 때마침 직업재활훈련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산재근로자들의 모습이 나왔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에서 그는 큰 감동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길로 수소문을 하여 안산직업재활훈련원에 입소를 했다.

“노력은 장애를 이긴다”

훈련원의 다양한 과정 중에서 그는 적성과 향후 전망 등을 고려해 의상디자인과를 택했다. 1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세탁기능사 등 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후, 그는 근로복지공단의 도움을 얻어 2006년 6월 시흥에 작은 세탁소를 열었다.

갑작스런 창업에 주변의 우려가 컸다. 평생 연금이 나오고, 몸도 편치 않은데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 있어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연금에 의지해 사는 하루살이 인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또 장애라는 이유로 못할 것이라고만 보는 세상의 편견도 깨고 싶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동네 사람들도 공감할 것”이란 생각을 갖고 매일 3~4시간씩을 자며 일에 매달렸다. 쉬는 날도 거의 없이 이른 새벽 가장 일찍 문을 여는 그에게 동네 사람들은 ‘새벽 도깨비’라는 별명까지 지어줬다.

이런 노력 끝에 그의 세탁소는 번창을 거듭했고 분점도 여러 곳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본래 세탁소를 연 것 자체가 돈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 자신의 기술과 성공노하우를 세탁소 창업에 관심을 갖는 산재근로자들에게 아낌없이 알려주고 있다. 또 자신이 갖고 있는 다른 점포를 주변의 불우한 이웃이나 산재근로자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임대해 주고 있다.

김도한씨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Again’이다. 그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을 ‘다시’ 시작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실패와 장애를 두려워말고 과감히 ‘다시’ 시작하라는 그의 말이 보다 많은 산재근로자들의 마음에 전달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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