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선 한국산업간호학회 회장 /가톨릭대 보건대학원 교수

최근 우리나라 산업보건분야가 ‘건강보호’라는 수동적 성향을 벗어나 ‘건강증진’이라는 능동적 형태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의 흐름이 안정적으로 우리 산업현장에 정착할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보건관리 수준 격차, 보건관리자선임 확대 문제 등 다양한 산업보건현안이 이러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보건의 진정한 진화를 위해서 이들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할 사안들이다.

이런 점에서 본지는 최근 한국산업간호학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정혜선 가톨릭대 교수를 만나 당면한 산업보건 현안에 대한 해법들을 들어봤다.

 


Q. 교수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삼영전자공업주식회사 보건관리자,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전문위원, 한국산업간호협회 교육국장 등을 거쳐 현재는 가톨릭대 보건대학원에서 산업 및 지역사회간호학 전공책임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한국산업간호학회장에 선출돼 올 1월 1일부터 회장직도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 이력에서 보듯 저는 사업장에서 산업간호사로 근무를 해본 것은 물론 중앙부처에서 산업보건 행정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이론, 실무, 행정을 포괄하는 경험을 토대로 산업간호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산업간호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향후 한국산업간호학회를 이끌어 감에 있어 역점을 두실 부분이 있다면?

먼저 저는 산업간호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하는 학술적인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전 업종에 보건관리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등 산업보건을 둘러싼 환경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 학회가 산업간호의 발전 방향과 실행 전략을 제시하는 등 산업간호의 브레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매달 ‘산업간호포럼’을 개최하려고 합니다. 포럼을 통해 산업간호인의 역량이 집결되고, 우수한 발전안이 지속적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산업보건 인력들의 전문성을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해 한국산업간호협회와 공동으로 ‘산업간호사 자격과정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학회의 지역별 이사님을 중심으로 권역대학을 정해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방안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이밖에 학술 연구용역 수행, 국제교류 강화, 학회지 발간 횟수 증편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여 학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견고히 구축할 것입니다.

Q.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보건관리 수준의 격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요?

지난해 저는 민간기관 최초로 ‘반월시화지역산업보건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했었습니다.

지역산업보건센터는 소규모사업장 근로자 보건관리를 위해 설립된 곳으로, 일종의 근로자보건소 같은 곳입니다.

저는 이 센터를 위탁받아 운영하면서 소규모사업장의 특성을 살린 보건관리가 펼쳐져야 중소기업의 보건 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규모사업장은 이전, 폐업 등이 빈번한데다 근로자의 이직율도 높기 때문에 현재 실시되고 있는 단위사업장 위주의 보건관리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소규모사업장의 또 다른 특징을 살펴봐야 합니다.

대부분의 소규모사업장은 유사업종위주로 밀집되어 있고, 사업장 이전이나 근로자 이직 등도 동일 지역사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소규모사업장에 대한 보건관리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을 중심으로 접근(community-based approach)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즉 한 사업장이 아닌 지역 전체를 두고 보건관리를 펼쳐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더해 외국인근로자센터, 여성지원센터, 장애인재활사업장 등 지역 내의 다양한 자원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소규모사업장의 보건관리를 더욱 활성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Q. 위 질문에 더해 또 다른 해법을 제시해 주신다면?

제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를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대규모사업장과의 연계를 통한 방법입니다.
작년에 저는 안산지역을 중심으로 보건관리사업을 펼치면서 대규모사업장과 연계한 소규모사업장의 관리방식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이 방식은 대기업와 그 협력업체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소규모사업장의 근로자들이 교육이나 건강관리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대규모사업장이 장소 등을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근로자건강센터가 방문관리를 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대규모사업장의 우수한 시설을 기반으로 하여 관리가 이루어지니 소규모사업장의 근로자들은 보다 양질의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밖에 아파트형공장의 특성을 이용한 방법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 아파트형공장 건물의 입주자대표와 협의를 하여 아파트형공장 건물 내에 보건관리실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간 건강관리를 받기 어려웠던 공장내 다양한 소규모사업장들이 보다 쉽게 건강관리서 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Q. 각종 세미나 등에서 보건관리자 제도의 개선이 필요함을 역설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간략히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시겠지만 보건관리자는 근로자 건강관리와 작업환경관리를 동시에 수행하는 인력입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사, 간호사, 산업위생기사, 대기환경기사 등이 보건관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헌데 이들 자격 소지자들은 보건관리자 업무를 포괄적으로 수행하는데 있어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격 특성상 의사나 간호사는 근로자 건강관리에는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작업환경관리에는 다소 미숙한 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산업위생기사, 대기환경기사 등은 작업환경관리능력은 우수하지만 근로자 건강관리에는 부족함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현재의 자격 소지자들이 건강관리와 작업환경관리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끔 별도의 교육이나 훈련 등을 받도록 하는 보완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간호사가 산업위생기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Nurgienist(Nurse +Hygienist)라는 인력기준을 마련하고, 이 기준에 부합하는 능력을 갖춘 자에 한해서 사업장의 보건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간호사 등의 보건관리자가 종합적인 보건관리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이나 이에 대한 자격을 갖추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보건관리자 선임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밝히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필요성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재 보건관리자를 두어야 할 업종은 제조업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산업재해발생 경향을 보면 제조업보다 비제조업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제는 업종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업장에 보건관리자가 배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꼭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근로자들은 건강을 보장받으며 일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보건관리자선임 확대는 필히 추진되어야 할 사안입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건강한 근로자는 작업능률이 높기 때문에 회사의 생산성 향상에도 큰 기여를 합니다. 그러니 근로자의 건강을 관리하는 보건관리자의 선임을 늘리는 것은 노·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 등은 모든 업종에 보건관리자를 선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시급히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여 보건관리자 선임대상 업종을 전 업종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산업간호와 관련해 정부에 건의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다면?

산업간호의 경우 현장 중심을 지향하다보니 인력 및 조직체계, 교육체계, 연구 등 많은 부분에서 타 산업의료분야보다 취약합니다.

산업간호가 이런 취약한 점을 극복하고 산업의학, 산업위생분야와 동반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행정적인 뒷받침이 매우 절실합니다. 하지만 그간 대다수 산업간호사들이 현장에서 묵묵히 맡은 바 임무에만 충실하다보니 이런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정부에 잘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산업간호사는 산업현장의 작업 관련 질환을 예방키 위해 근로자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업무에 자긍심을 가지고, 근로자들의 건강관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산업간호에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을 가져주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사업장 보건관리자의 64.5%가 산업간호사인 점을 감안할 때 사업장 건강관리에 대한 업무지도와 정책개발에 산업간호사들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산업간호 인력의 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기를 요망합니다.

Q. 전국의 안전보건관계자 또는 근로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전보건관계자는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하는 매우 보람된 일을 하는 전문인력입니다.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능동적으로 업무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때론 사업장의 여건이 힘들고 어려워 원하는 만큼의 업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해 아쉬울 때도 있으실 겁니다. 허나 현실에 절대 무릎 꿇지 마시고 본인의 결의를 지켜나가시길바랍니다.

안전보건관계자는 사업장에서 꼭 필요한 인력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나라 모든 구성원이 인정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노력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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