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봉 한국지진공학회 회장

산업현장 대응 매뉴얼 수립은 초기 단계, 지속적 연구와 투자 필요

지난달 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강진으로 인해 온 나라가 비상 상황이다. 더 이상 지진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절감하는 가운데 피해 수습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 관련 기관·단체 등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번 포항 지진은 지진에 둔감했던 우리 사회에 많은 교훈과 함께 과제를 안겨주었다. 일본 등 안전 선진국에 비해 축적된 경험이 부족하고 대응절차도 미흡하다보니 복구는 더디고 대책 마련도 쉽지 않았다.
우리도 이제는 체계적인 지진 대응 및 피해 복구 방안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이 공포에 떨지 않도록 지진 예측기술을 연구하고 시설물 내진 보강 등에 대한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한 산업시설의 안전 운영을 위한 방재대책도 수립해야 한다.
이에 지진 관련 분야의 저명한 석학인 신수봉 한국지진공학회 회장을 만나 우리나라의 지진재해 대응체계 현황과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신수봉 한국지진공학회 회장
신수봉 한국지진공학회 회장


 Q.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강진이 우리나라를 덮쳤습니다. 최근 들어 아시아지역에서 지진재해가 다발하는 것 같습니다.
판 구조 이론에 입각해 설명을 드리면, 아시아에는 인도판·유라시아판·태평양판·필리핀판 등 4개의 판이 있는데, 이 판들이 상호적으로 움직이면서 경계면에서 지진이 많이 일어납니다. 특히 터키, 일본, 대만 같은 나라들은 판의 경계면 쪽에 있기 때문에 지진이 더욱 다발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계면 안쪽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대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하고 올해에 전반적으로 지구 판의 움직임이 조금 더 커지면서 일본이나 중국 쪽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들 지역에서 큰 지진이 발생한 경우 한반도에서도 지진이 발생한 적이 꽤 있는데, 최근의 경주나 포항지진이 이 같은 영향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Q. 일본에서는 2011년 히로시마와 2013년 간토, 2016년 혼슈 지역 등에서 포항 지진과 비슷한 규모 5.4 정도의 지진이 발생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비교해 지진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양국의 지진 대응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일본과 우리나라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일본은 규모 5.4를 넘어 6이나 7이상의 지진이 계속 발생하는 나라로, 지진에 대한 대비가 매우 잘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작년 경주와 올해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 과연 지진이 올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을 정도로 지진에 대해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사실상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지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아직까지는 일본처럼 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지진에 대한 피해가 더 크게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또 추가로 말씀드리면, 이번에 발생한 피해는 지진 대응이 미흡해 발생한 피해라기보다 부실시공 등 여러 복합적인 원인에 기인한 것도 적지 않습니다.  


Q. 포항은 원전에 더해 주요 산업시설이 밀집되어있는 지역입니다. 지진으로 인한 산업현장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현재는 산업현장이 갖추어야할 필수 지진 대응 매뉴얼이라고 명확하게 제시할 만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제 준비하고 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시설은 가스, 전기 등 여러 위험요인이 집약된 현장인 만큼, 그 대응 매뉴얼도 무척 복잡합니다. 이를 감안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럼이나 과제 수행 등을 통해 가이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만큼, 그 수행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은 아닙니다. 더욱 많은 전문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고 국가의 지원도 필수적입니다.
하루아침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당장 미봉책을 마련하기 위해 급급해 하기 보다는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체계적인 대책을 수립·적용해 나가야 합니다.


Q. 우리 정부의 지진 대응 수준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우리 정부가 대응을 잘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경주에 지진이 오고 난 다음에 국민안전처(현 행정안전부)가 기획단을 구성해 110가지 이상의 개선과제를 도출했고 이중 46개 정도가 실행이 됐으며, 지금도 계획대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포항지진이 발생하면서 일종의 지진 대응 테스트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추가로 개선해야 될 점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개선이 잘 된 점도 나타났습니다. 지진 조기 경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작년 경주지진 때는 경보 알림이 굉장히 늦었는데 올해는 매우 일찍 왔습니다. 물론 조금 더 빨라져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큰 발전을 이룬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앞으로는 여러 부분에서 단계별로 이 같은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산업시설에 대한 지진 대응도 이런 차원에서 정리가 이뤄지는 단계라고 봅니다. 


Q. 앞으로 우리나라 지진대응정책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광범위한 시각의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은 큰 규모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동안 복합재난(화재, 폭발, 붕괴 등이 동시에 일어나는 재해)으로 분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매우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선제적인 대비에 나서야 합니다. 다시 말해 지진과 함께 화재, 폭발, 붕괴 등의 재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전방위적인 대책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Q. 건축구조물이 이번에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내진설계에 대한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내진설계는 구조설계에서도 매우 어려운 부분에 속합니다. 고도의 구조설계가 반영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 법률상 건축물의 층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중저층 건물의 내진 설계 도장은 건축사들이 찍고 있습니다. 관련 전문성과 특수성을 감안해 이 업무는 건축구조기술사들이 담당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하는 문제이니 만큼, 해당 분야 숙련전문가의 의견이 반드시 반영이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국회 등이 제도적인 개선에 나서주길 바랍니다. 


Q. 산업현장의 경영진과 근로자들에게 당부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언싱커블(Unthinkable)’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벌어진 911 테러에 대한 경험담을 모은 책입니다. 여기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이 발생하면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담겨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례를 보면,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빌딩에 항공기가 충돌해 화재가 발생하고 난리가 났는데, 그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처음에는 우왕좌왕하면서 당황하다가 다시 아무 일 없는 듯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 내용이 나옵니다. 현재 펼쳐진 상황이 머리 속에서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사고가 멈춰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건물 보안 담당자들이 사람들의 뺨을 때려가며 억지로 끌고 나와서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우리에게는 위험상황을 감안한 훈련과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한 번이라도 민방위훈련이나 지진대피훈련 등에 참여해 위급상황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체험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돌발적인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적절하게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신수봉 한국지진공학회 회장 Profile
. 인하대학교 사회인프라공학과 교수
. 서울특별시 도로시설안전포럼 부의장
. IASCM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Structural Control & Monitoring) Korean Chapter, Chairman
. 인천광역시 건설기술심의위원 / 지진피해조사단원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설계자문위원 / 기술자문위원
. 한국시설안전공단 기술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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