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효 대림산업 차장

 

국경 근처의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노인의 집에서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도망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노인을 위로하며 동정하자 노인이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위로는 고맙습니다만 그렇게 아쉬워할 일이 아닐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몇 달 후 도망쳤던 노인의 말이 배필로 훌륭한 수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축하의 말을 하자 노인이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축하는 고맙습니다만 너무 기뻐만 할 일이 아닐 수 있으니 그만 돌아들 가시지요.”

사람들은 노인의 태도에 의아해하며 돌아갔습니다.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새로 온 말을 길들이려고 탔다가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졌고, 치료를 했지만 결국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도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노인을 위로하자 노인이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일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으니 나는 괜찮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이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수군대며 돌아갔습니다.
몇 년 후 노인이 살던 국경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마을의 모든 젊은이들이 징집되어 전쟁터로 나갔고 그들 중 대부분이 전사했습니다.
그렇지만 노인의 아들은 불구였기 때문에 징집을 피할 수 있어서 살아남았습니다.

저 일화에서 ’새옹지마(塞翁之馬,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무쌍한 일들을 그때마다 극단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의 여지(餘地)를 가질 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지(餘地)는 남을 ‘여(餘)’, 땅 ‘지(地)’로 글자 그대로 남는 공간이란 의미입니다.

감정을 완충하는 공간인 마음의 여지(餘地)를 가질 때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한 일상에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휘둘리지 않습니다.
마음의 여지가 부족할 때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 뜻대로 통제하려고 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불안감을 느낍니다.
이유를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한다면, 그때는 내 마음의 여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불안감은 두려움을 낳고, 그 두려움이 분노를 낳고, 분노가 적개심(敵愾心)을 낳습니다.
가장 무서운 감정이 적개심이니, 적개심은 자신과 상대를 모두 파괴합니다.

우리 주변에 불안한 일들이 많고 갈등 또한 많은 변화무쌍한 시절입니다.
욕구나 관심,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다를 때 갈등이 일어나는데, 갈등(葛藤)이라는 단어는 우측으로 감아 올라가는 칡넝쿨(葛)과 좌측으로 감아 올라가는 등나무 줄기(藤)가 서로 얽히면서 꼬이는 모습을 보고 만든 단어입니다.

갈등 중에서 상대에게 여지(餘地)를 주는 갈등은 서로를 의지하여 위로 뻗어 올라 햇빛을 받으면서 서로를 살리지만, 여지(餘地) 없는 갈등은 서로를 그늘로 끌어내려 함께 고사(枯死)합니다.
여지(餘地) 없는 갈등이 불안감을 만들고, 불안감이 두려움을 만들고, 그 두려움이 곳곳에서 분노와 적개심을 유발하고 있는 시절입니다.

마음의 여지는 상대방에 대한 용서(容恕)의 마음에서 나오고 용서의 ‘서(恕)’는 같을 ‘여(如)’, 마음 ‘심(心)’으로 만들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상대방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마음으로 상대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가 바로 용서의 본질이니 용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나옵니다.
존중은 스스로 낮추는 겸손에서 나오며, 겸손은 자기신뢰의 자존감(自存感)에서 나옵니다.

결국 자기신뢰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여지(餘地)가 나오는 것입니다.

삶의 지혜를 담은 ‘중용(中庸)’의 제 23장에 ‘유천하지성(唯天下至誠)’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자기신뢰(自己信賴)는 성실(誠實)에서 기인하며, 성(誠)은 말(言)을 이룸(成)이니 모든 언행(言行)에 지극한 정성(精誠)을 다할 때 신의(信義)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갈등과 불안, 두려움과 분노와 적개심이 만연하고 있는 이 시대에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면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고사에서 나오는 마음의 여지(餘地)가 필요하고, 매 순간 온 정성을 다하는 성실을 통해 자기신뢰를 쌓을 때 겸손하고 존중하며 포용하는 마음의 여지(餘地)를 회복할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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