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랑하는 우리 아내가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우리 딸이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상기 멘트는 최근 한 기업에서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고객센터 통화 안내 멘트다.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기업의 고객센터 상담원들을 위해 그들의 가족이 직접 안내 멘트를 녹음한 것이라고 한다. 이 가족들은 고객센터 상담원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마음이음 연결음’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안내멘트의 효과는 놀라웠다. 시행 5일 만에 상담원들의 스트레스가 절반이 넘게 줄었고, 0%였던 ‘존중받는 느낌’은 25%로 치솟았다. 반말, 무시, 욕설·폭언 등으로 시작됐던 통화는 친절과 배려의 따뜻한 말로 바뀌었다. 그저 10초도 채 안 되는 안내 멘트만 바꿨을 뿐인데, 상처 받은 감정노동자들의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감정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였다. 이들이 극심한 스트레스, 우울증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힘겨워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 곳곳에서 관심이 일었다.

이에 정부와 국회가 감정노동 종사자 보호법안 제정에 나섰으며, 주관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감정노동의 개념과 관리의 필요성, 노동자에 대한 건강보호 조치 등을 담은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핸드북’을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법률만큼의 강력한 권한은 없지만 이 핸드북에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실효성 높은 방한이 꽤 담겨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고용부는 사업주에게 고객이 무리한 요구나 욕설을 멈추지 않으면 상담원이 전화를 끊을 수 있는 재량권을 주도록 권고했다. 즉 폭언·폭력을 저지르는 고객에 대한 ‘업무중단권’을 부여하도록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상담센터 노동자가 폭언·폭행 등을 저지른 고객에 대해 고소, 고발, 손해배상 청구 등 민·형사상 조치를 할 때에는 사업주가 행정적, 절차적 지원을 하도록 권고했다. 특히 고용부는 기업들이 ‘미스터리 쇼퍼’ ‘미스터리 콜’ 같은 평가 시스템도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고용부는 이번 핸드북을 내놓으며, 감정노동자 보호조치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입법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법안 도입에는 시일이 소요됨에 따라 핸드북을 우선 보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부의 말처럼 감정노동자 보호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입법화, 법제화가 필수적이다. 허나 그것이 실질적인 개선효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우리의 산업안전보건법이 매우 강력한 조치를 담고 있음에도 재해예방효과가 아주 크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법은 그저 최소한의 기준만 제시할 뿐이다. 감정노동자의 안전보건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전반적인 인식개선이 우선돼야 한다. 특히나 이 문제는 시설개선이나 안전설비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에 더욱 계몽과 사회적 공감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서두에 제시한 사례는 감정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방법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마음을 상처 입게 하는 감정노동 문제의 해법은 결국 고객과 상담원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마음을 잇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례를 발굴하고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전략적이고 선제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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