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임현교 교수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임현교 교수

또 한 해를 넘긴다. 교편생활을 한 지 벌써 삼십 년에 가까운데, 새해를 맞을 때마다 반성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안전분야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에게 과연 앞으로의 방향만이라도 올바로 가리켜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눈앞의 ‘취업’에 목을 매어 영어 단어 하나, 자격증 하나 더 얻는 것에 목숨을 걸고 있다시피 하는 요즈음 학생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20년쯤 전에 일본의 공장을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이름을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이기는 했지만, 일본의 특성답게, 소소한 작은 물품들은 중소규모의 공장에서 제작하여 납품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따라 방문자들은 그곳 안전관리자로부터 회사 소개와 함께 안전관리분야의 업무계획을 브리핑 받게 되었다. 통상 현장의 안전관리자가 발표하는 내용이야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기서 거기니, 의례 그러려니 하고 귓등으로 흘리곤 하였는데, 그 날은 달랐다.

그가 슬라이드에 올려놓은 것은 자기 공장을 위해 계획된 30년짜리 안전관리 마스터플랜이었다. 이미 1980년 전후에 만들었다는 그 플랜에는 대략 1990년까지는 안전작업표준의 도입과 개별적 위험요인에 대한 평가와 대책수립을 완료하고, 2000년까지는 생력화(省力化), 자동화를 추진하며, 2010년 전후에는 사회적 동향인 소자화(少子化), 여성화(女性化)에 대비하여야 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 다음에 보여 준 사고발생을 설명하는 그림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새롭고 신선한 모델이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그 자료를 어디서 입수했느냐, 원저자가 누구냐, 어느 논문에 실려 있었느냐는 둥, 방문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대답은 의외로 싱거웠다. 마스터플랜을 계획한 사람도, 사고발생모델을 만든 사람도 본인이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안전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현장 경험 8년차의 전기공학 엔지니어! 그가 만들었다던 마스터플랜도, 사고발생모형도 적어도 자기 공장에 관련된 사회적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 당면과제를 도출해 내고, 체계적인 해결방안을 꿰뚫고 있었다. 연구와 지도를 업으로 하는 필자가 과연 그런 통찰력과 현장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새해를 맞을 때마다 반성하는 것은 그 때의 통렬한 아픔 때문이다.

매스컴 한쪽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더 급속히 확대,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미 2만여 명이 일하던 중국의 어떤 공장에서는 로봇 기술과 자동화가 도입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봇 관리직원 100명만 남은 사례가 있다고 한다. 로봇 개체수로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많지만, 근로자 1만명당 로봇수로 나타낸 로봇밀도는 우리나라가 이미 세계 1위라고 한다. 미국의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20년 이내에 미국의 일자리 47%가 소멸된다고 하고, 2030년까지 전세계의 일자리 20억개가 사라진다고 한다. 어떤 예술가는 자동차 생산공장의 로봇속도를 1.6초 빠르게 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진 노사갈등에서 작품의 컨셉을 얻었다고도 한다. 물론 가상현실을 이용한 교육이나 프로그래머의 수요는 급증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런 변화 속에서 생동감 있게 일하는 로봇보다 더 밝은 얼굴로 일하는 근로자들을 기대해도 좋을까 ?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안전’과 ‘인간’의 가치는 양보할 수 없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세밑에 발생한 대형화재가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에 일본 나가사키를 다녀왔다. 전쟁의 고통이야 말도 없이 비참하고 피해도 극심하였지만, 살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하였고, 미래를 위해 아이들을 키워왔다고 기념관에 써 있었다. 우리 산업사회도 마찬가지로, 해마다 무수히 많은 산업재해를 경험하며 발전해 왔다. 어려울 때마다 잘 넘겨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는다. 더구나 새해는 무술년(戊戌年), 황금 개띠해. 생각만 해도 듬직한 녀석이 떠오르듯이,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겠지. 아니, 반드시 그렇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 구절은, 언제나 새해는 따스할 거라고, 등 두드려 주지 않았던가.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險難)하고 각박(刻薄)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 ‘설날 아침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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