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산업안전보건분야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관리제도 시행, 산업재해 발생 거짓보고시 처벌 강화, 출퇴근 재해의 보상 범위 확대 등이 그것이다. 하나하나가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노동자 안전보건에 있어 중요하다. 허나 그중에서 가장 큰 파급력을 지닌 것을 꼽으라면 역시 ‘출퇴근 재해의 산재 인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는 통근버스 등 사업주가 제공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던 중 발생한 사고만을 산재로 인정했으나, 산재보험법 개정에 따라 올해 1월 1일부터는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도 산재로 인정된다.

정부에 따르면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은 대중교통, 자가용, 도보, 자전거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통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통상적인 경로로 출퇴근하는 것을 말한다. 공사나 시위, 집회, 카풀 등으로 인해 우회하는 경로도 통상적 경로에 포함된다.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를 일탈 또는 중단하던 중 발생한 사고는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단, 일탈 및 중단의 사유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인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는 ▲일상생활용품 구입 ▲직무관련 교육·훈련 수강 ▲선거권 행사 ▲아동 또는 장애인의 등·하교 또는 위탁 ▲진료 ▲가족간병 등이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고 헷갈려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어디까지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 명확히 알 수가 없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지침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가나, 사실 상식에 입각해 생각하면 당연한 수준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몇 가지를 살펴보면,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식료품을 구입하는 행위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 인정되나,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러 명품가방을 사는 행위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용접기술을 배우기 위해 퇴근길에 직업훈련교육기관에서 훈련을 받는 행위는 인정되지만, 퇴근길에 취미로 요가를 배우러 가다가 발생한 사고로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선거권 행사도 비슷한 개념이다. 출근길에 국회의원 보궐선거 투표를 하는 것은 인정되나, 퇴근 중에 취미활동 동호회 회장 선거 투표를 하는 행위는 인정받지 못한다.

아동이나 장애인을 보육기관 또는 교육기관에 데려주거나 해당 기관으로부터 데려오는 행위의 경우는 그 말처럼 학업이 기준이 된다. 출근길에 미취학 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행위는 인정되지만, 퇴근길에 아르바이트를 마친 고등학생 자녀를 데리러가는 행위는 인정받지 못한다. 질병의 치료나 예방을 목적으로 진료를 받는 행위도 유사하다. 고혈압약을 처방받기 위해 퇴근길에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행위는 인정된다. 하지만 퇴근길에 피부과에서 미용목적으로 보톡스를 맞는 행위는 인정되지 않는다.

예를 살펴봤듯, 모두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충분히 준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를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수년에 걸쳐 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얻어낸 ‘출퇴근 사고의 산재 인정’이 몇몇 무분별한 행위로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노동자와 사업주의 대립이 심상치 않다. 사람다운 생활을 위한 당연한 권리라는 주장과 과도한 인건비로 인해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출퇴근 재해 인정’도 그 대립의 또 다른 주제가 될까싶어 걱정스럽다. 벌써부터 노동자를 불신하며, 감당 못할 정도로 산재 인정 요구가 쏟아질 것이란 우려 섞인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말들이 과도한 걱정이길 바란다.

부디 노·사·민·정 모두의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변화된 출퇴근재해 보상제도가 이 땅에 잘 정착해서 모든 노동자가 출근부터 퇴근까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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