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진 을지대학병원 교수

오한진 을지대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오한진 을지대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산업화 이전에는 쌀밥이 귀했다. 평범한 서민들에게 쌀밥이란 생일이나 잔치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오죽하면 쌀밥에 고깃국을 먹어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다. 당시 사람들이 쌀밥 대신 먹던 것은 주로 보리, 현미, 콩, 수수, 조 등의 잡곡이 주인 잡곡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먹어보기를 소원했던 쌀밥은 건강을 해치는 원흉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이던 잡곡은 건강식품으로 재조명되면서 잡곡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잡곡이 건강에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음식이 그렇듯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잡곡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잡곡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잡곡은 무조건 몸에 좋다며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의해야 한다.

잡곡도 탄수화물이다

“쌀밥은 안 되지만 보리밥은 양껏 먹어도 괜찮죠?”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처럼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간혹 하는 말이다. 당뇨병 환자들에게 쌀밥보다 보리밥을 권하는 이유는 보리밥이 쌀밥보다 식이섬유를 비롯해 더 많은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흰 쌀밥은 껍질을 완전히 벗겨 식이섬유는 물론 비타민과 무기질 같은 영양소가 없는 순수한 탄수화물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섭취했을 때 소화가 잘 돼 혈당을 빨리 올리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에게 좋지 않은 음식으로 꼽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리밥을 비롯한 잡곡은 다르다. 쌀밥에 비해 잡곡은 식이섬유가 풍부해 혈당을 천천히 올릴 뿐만 아니라 포만감을 쌀밥보다 오래 지속시키고, 대장을 깨끗하게 청소해준다. 비타민과 무기질도 쌀밥보다 풍부해 영양학적으로도 더 좋다. 하지만 잡곡 역시 기본은 탄수화물이다.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현미밥이든 주 영양소는 탄수화물이고, 칼로리도 한 공기당 약 300kcal로 비슷하다. 따라서 몸에 좋은 잡곡밥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안 된다. 하루에 필요한 총 탄수화물의 양을 고려해 적정량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까끌한 현미 대신 부드러운 찰현미는 안 될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잡곡 중 하나가 ‘현미’다. 현미는 벼에서 제일 겉에 있는 왕겨만을 제한 것으로 영양이 많은 쌀겨와 배아(쌀눈)가 살아 있는 잡곡이다. 현미에서 쌀겨와 배아를 제거하면 그것이 곧 백미가 된다. 쌀은 도정을 하면 할수록 원래 함유하고 있던 비타민과 무기질, 단백질, 지방질이 감소하고 탄수화물의 함량이 증가한다. 현미와 백미를 비교하면 식이섬유는 3배, 비타민 B1과 E는 4배 이상, 비타민 B2는 2배 이상, 철과 인 같은 무기질은 2배 이상 현미에 더 많다.

이처럼 현미는 영양학적으로도 백미보다 뛰어나고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를 예방하고 몸에 나쁜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식이섬유가 풍부하다는 것은 현미의 장점이자 곧 단점이다. 식이섬유는 거칠어 먹기도 힘들고 소화도 잘 안 된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쌀밥처럼 단맛이 적어 맛도 덜한 데다 씹기도 힘들다 보니 현미밥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이 제법 많다. 소화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더더욱 현미밥을 먹기 힘들어 한다. 이런 이유로 현미는 먹고 싶은데 거칠어서 먹기 힘들어 하는 분들이 차선으로 선택하는 것이 찰현미다. 찰현미는 현미보다 식감이 부드럽고 소화가 잘된다. 많은 사람들이 먹기 편하면서도 현미를 섭취했을 때의 효과를 그대로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로 찰현미를 선택하는데 이는 큰 오산이다. 찰현미는 현미보다는 찹쌀 쪽에 가깝다. 찹쌀과에 속하는 곡식으로 당 함유량이 꽤 높아 당뇨 환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그래도 백미보다는 비타민 B와 무기질이 많기 때문에 당뇨가 없고 위장이 약해 소화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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