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Column

정성효 대림산업 안전보건팀 차장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많은 시절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눈만 마주쳐도 화를 내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하고 13년째 세계 1위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빈발하고 있는 안전사고 또한 분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분노가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가 자살이고 분노로 평정심을 잃을 때 사고가 발생합니다.

이 영화는 분노가 소용돌이치는 시대에 분노를 다루는 방법을 수준 높게 다룬 수작입니다.

‘쓰리 빌보드’ 마을 외곽 도로변에 방치된 세 개의 광고판에 세 개의 문장이 게시되면서 영화가 시작됩니다.

‘강간을 당하면서 죽어갔다’
‘그런데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다고?’
‘윌러비 서장! 뭐하고 있는 거야?’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고통과 분노가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점점 혼미해져가는 정신에 찬물을 끼얹어 정신을 벼리는 각성제 같은 이 영화는 인간이 분노에 반응하고 분노를 처리하는 방식을 가볍지만 매우 심오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생존의 본능이 두려움의 방패를 만들어 삶을 수호하고, 그 방패에서 나온 창(槍)이 바로 분노이니 결국 그 분노의 원형은 삶을 유지하려는 자기 사랑인 자기애(自己愛)입니다.

광고판에 저 글을 게시한 밀드레드는 강간을 당하고 불에 타 죽은 여자아이의 엄마입니다. 온 세상 모든 남자들의 DNA를 확인해서라도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 죽이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기에 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경찰에게 쏟아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것이 경찰이 할 수 없는 일이며 경찰도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녀가 분노하는 대상은 경찰이 아닙니다. 자신을 학대하다 떠난 남편으로 인해 삶이 위협당하자 두려움에 빠진 그녀는 격렬한 분노로 남편과 남편의 애인, 아들과 딸에게까지 무자비한 공격을 가했습니다.

어느날 집을 나서는 딸과 다투던 그녀는 ‘집에 오다가 강간이나 당해라’는 저주의 말을 내뱉습니다. 그날 딸은 그 말처럼 집에 오는 길에 강간을 당하며 끔찍하게 살해됩니다. 죄책감을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살기 위해 죄책감을 복수심으로 투사합니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 온 세상을 향해 분노를 뿜어냅니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약하고 여린 마음과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화는 수준 높은 표현력으로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또 다른 주연인 경찰서장 윌러비는 췌장암으로 죽음을 가까이 대면하면서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끼고 삶의 본질을 깨닫습니다.

“사랑이 침착함을 일깨우고 침착함이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생각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천국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겠지….천국이 없다면 당신과 있었던 이곳이 천국이었어…”
근원적 사랑을 자각할 때 침착해지고, 침착하게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자각하여 두려움과 분노에 휩쓸려 범하는 실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내가 당한 만큼 너도 당해야 한다’는 분노의 윤회가 ‘내가 싫은 만큼 너도 싫을 테니’ 그만 멈추는 인(仁)의 태도로 상승하는 것입니다.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는 경관 딕슨은 자신을 보호해주던 윌러비 서장이 자살하면서 삶이 위협당하자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빠져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경찰에서 해고당합니다. 설상가상 딕슨은 밀드레드가 던진 화염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큰 화상을 입습니다.

딕슨은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통해 자신이 행한 폭력의 부당함을 깨닫게 되고, 밀드레드는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행했던 자신의 응징이 무고한 사람을 향한 부당한 폭력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영화의 엔딩은 밀드레드와 딕슨이 파렴치한 강간범임이 분명해 보이는 한 악인을 단죄하여 죽이기로 공모하고 그가 사는 곳으로 차를 몰아 함께 가면서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사실은 경찰서에 불을 지른 게 나야...”
“뻔한 소리를 하고 있네...”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럼 당신 말고 누가 그럴 사람이 있겠어...”
“푸하하하....”

너무나 가볍게 자신을 용서하는 딕슨을 보며 밀드레드는 처음으로 호탕하게 웃습니다. 그 웃음은 딸에게 용서받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안도감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놈을 죽여도 괜찮은 걸까….사실은 좀 내키지 않아...”
“그래 사실은 나도 그래.....그 문제는 가면서 천천히 생각해보자…”

두 사람은 이미 분노에 떠밀린 충동을 넘어 자신을 침착하게 지켜보는 단계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순간 마음을 멈추고 분노의 뿌리를 살피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사회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가 제시한 인간 욕구 5단계 중 첫 번째가 생존의 욕구입니다.
삶의 근간이 흔들릴 때 인간의 생존 욕구에서 나온 자기애(自己愛)가 두려움과 분노를 유발하여 침착성을 잃으면서 위험에 빠집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생존의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안전의 가장 근원적인 대책이며 안전한 사회의 구현을 위해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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