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우리 형법에서는 원칙적으로 고의범만을 처벌 대상으로 하고, 과실범은 예외적으로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처벌한다(형법 제13조, 제14조). 또 과실범의 처벌은 예외적일 뿐만 아니라, 처벌하는 경우에도 고의범에 비하여 법정형이 낮기 때문에 고의와 과실의 구별은 중요하고 그 실제적 영향이 지대하다.

예컨대, 일정한 행위로 타인이 사망한 경우에 사망에 대한 고의가 인정되면 보통살인죄로서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받는 데 비하여(제250조 제1항), 사망에 대하여 과실이 인정되면 과실치사죄로서 2년 이하의 금고형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업무상과실이 인정되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서 5년 이하의 금고형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받으므로(제267조),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고의범인지, 과실범인지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고의와 과실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이 중에서도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고의의 본질론의 핵심적인 논의대상이 되고 있다. 미필적 고의는 고의 중에서 가장 불확정적인 고의의 형태이므로 인식 있는 과실과의 구별이 모호하다. 그러나 고의와 과실은 형벌의 경중에서도 커다란 차이가 있으므로 그 구별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형법 제8조에 따르면,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법 총칙은 다른 법령에 정한 죄에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법령에 해당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시에도 형사처벌이 수반되는 위반행위가 범죄로 되기 위해서는 위반행위자에게 고의가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는 그 특성상 확정적 고의범에 해당하는 경우보다는 미필적 고의범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법상 형벌적용규정 위반 문제도 주로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발생하고 있다.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면 처벌받게 되고 인식 있는 과실범에 해당하면 처벌을 면하게 되므로, 산업안전보건법 영역에서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의 구분은 피고인의 유죄와 무죄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과실범을 따로 규정하지 않고 있고 해석상으로도 과실범도 처벌할 뜻이 명확한 조항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시 ‘형벌’이 수반되는 조항의 위반죄는 양벌규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의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는 그 특성상 고의범 중에서도 확정적 고의범보다는 미필적 고의범이 주로 문제가 될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미필적 고의범은 “산업안전보건기준을 위반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기준을 위반할지도 몰라. 그러나 그럴 리 없을 거야(위반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 것으로 인정되면 인식 있는 과실에 해당되어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처벌할 수 없게 된다.    

판례도 위반 시 형벌이 수반되는 산업안전보건법 조항 위반죄가 최소한 미필적 고의범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사업주가 사업장에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향후 그러한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정을 미필적으로 인식하고서도 이를 그대로 방치하고, 이로 인하여 사업장에서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채로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사업주가 그러한 작업을 개별적·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위 죄는 성립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판결문에서 “그대로 방치”하였다는 말은 결과발생을 용인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형벌이 부과되는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의 위반죄도 결국 행위자에게 미필적 인식과 용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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