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량칸막이와 대피공간
경량칸막이와 대피공간
  • 승인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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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ety Column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안전학과 교수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안전학과 교수

 

2016년 9월 24일 서울 도봉구 쌍문동 모 아파트 13층의 한 가정에서 불이 나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불은 1시간여만에 완전히 꺼졌지만 집 주인 이모(46)씨와 그의 둘째 딸(17·여), 막내딸(15·여)이 숨졌다. 한순간의 불로 일가족이 참변을 당한 것이다. 허나, 이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발코니의 한쪽 편에 위치해 있는 경량칸막이를 부수고 인접세대로 대피했더라면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경량칸막이가 유용한 대피수단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해 인명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경량칸막이 및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대피공간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한다.  
경량칸막이는 1992년에서 2005년까지 시공된 일자형 아파트 등에 주로 설치됐다.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건축관계법규에서 명시하고 있는 아파트에 설치된 피난 및 소방시설의 종류를 먼저 알아보자.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14조에 따르면 공동주택의 3층 이상인 층의 발코니에 세대간 경계벽을 설치할 때 화재 등의 경우에 피난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피난기구를 설치하거나 경계벽의 구조를 파괴하기 쉬운 경량구조 등으로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이 바로 ‘경량칸막이’다. 경량칸막이는 건축법 시행령 제46조에서도 대피공간에 대한 대체시설로 인정하고 있다.

공동주택의 경량칸막이 벽체구성재는 목재로 된 벽체와 강재 스터드 벽체가 사용된다. 마감재료는 석고보드가 주로 쓰이며, 내부 충진재로는 보온단열재가 사용된다. 따라서 파괴가 용이하기 때문에 화재 발생 시 경계벽을 쉽게 부수고 인접한 세대로 신속히 대피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경량칸막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보니, 경량칸막이 입구를 캐비닛이나 장식장 등으로 막아놓고 화재 시 경량칸막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해놓은 경우가 대다수다.
반면, 일본의 경우를 보자. 일본의 경량칸막이 관리수준은 우리나라와 확연히 대비된다. 경량칸막이 근처에는 어떤 물건도 놓아두지 않을 뿐 아니라 “비상시에는 여기를 부수고 옆집으로 탈출하시오”라고 상세한 매뉴얼까지 적혀있다. 누가 봐도 이것이 화재 시 대피수단이라는 것을 확실히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경량칸막이 아래를 비워놓아서 칸막이를 파괴할 때 턱받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여 대피가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였다. 우리는 경량칸막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일본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미운 나라라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하는 것이다.

대피공간은 2005년 이후 시공된 타원형 아파트나 발코니 확장 아파트, 오피스텔 등에 주로 설치된다. 2005년 이후 발코니 확장형 설계가 법적으로 허용되면서 세대 간 경량구조의 경계벽을 설치할 수 없는 경우에 경량칸막이 대신 대피공간을 두도록 하고 있다. 대피공간 설치에 관해 법에 규정되어 있는 사항은 건축법 시행령 제46조,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14조, 발코니 등의 구조변경절차 및 설치기준 제3조에 나타나 있다.

공동주택 중 아파트로서 5층 이상인 층의 각 세대가 2개 이상의 직통계단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 발코니에 인접세대와 공동으로 또는 각 세대별로 대피공간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인접세대와의 경계벽이 파괴하기 쉬운 경량구조 등인 경우 ▲경계벽에 피난구를 설치한 경우 ▲발코니의 바닥에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하향식 피난구를 설치한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중앙건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피공간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성능이 있다고 인정하여 고시하는 구조 또는 시설을 설치한 경우 등에는 대피공간을 설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예외규정은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대피공간을 설치했다 하더라도 매뉴얼이 없거나, 있어도 구분이 잘 안되어 창고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재발생 시 정말 유용한 대피수단인 만큼 상세한 매뉴얼을 배치토록 하고, 대피공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주기적인 홍보를 하여 창고용도로 사용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가정이 아닌 일선 산업현장에서도 건물구조가 복잡하거나 피난경로가 길어서 대피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면, 반드시 대피공간을 만들어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화재의 위험성에 철저히 대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