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날린 풍등의 불씨가 화재 원인으로 추정
최근 위험물 안전관리 위법사항 매년 증가 추세
화재 전주기에 대한 방호를 가능케 하는 심층방호개념 도입해야

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 화전동에 소재한 대한송유관공사의 저유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 화전동에 소재한 대한송유관공사의 저유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지 제공 : 뉴시스)


지난 7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에 소재한 저유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인근 주민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화재는 오전 10시 56분께 대한송유관공사 서울북부저유지에서 휘발유가 저장된 원형 탱크가 폭발하면서 발생했다. 이 폭발로 원형탱크의 콘크리트 상부가 날아가면서 불기둥이 치솟았고, 불길과 연기도 서울 등 인접지역에서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행히 직원들이 사용하는 사무실과 사고가 일어난 유류 저장탱크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직후 소방당국은 소방헬기 5대를 비롯해 장비 205대, 소방인력 684명을 동원해 진화작업에 나섰으나 워낙 화재 규모가 큰데다 대형 유류 화재의 경우 소화액이 사실상 통하지 않아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소방당국은 저유기 내부 배관을 통해 물을 주입한 뒤 유류를 상부로 띄워 태우면서 소화폼을 그 위에 살포하는 방식으로 사고 발생 17시간만인 8일 오전 3시 58분께 완전 진화에 성공했다.

한편 폭발이 발생한 저유소는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내부에 설치된 14개 옥외저장탱크 중 하나로, 지름 28.4m, 높이 8.5m 규모의 원형 탱크에 440만ℓ의 휘발유가 보관돼 있었다. 폭발로 인해 저유소 1개소가 사실상 소실됐지만, 내부에 보관돼 있던 440만ℓ의 휘발유 중 절반 이상은 옆 경유 탱크로 옮겨 물적 피해는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9일 경찰의 한 관계자가 화재 원인으로 지목되는 풍등과 동일한 모형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 9일 경찰의 한 관계자가 화재 원인으로 지목되는 풍등과 동일한 모형을 공개하고 있다.
(이미지 제공 : 뉴시스)


◇스리랑카 근로자가 날린 풍등으로 인한 실화(失火)로 추정
사고 원인을 규명 중인 합동수사본부는 인근 CCTV 분석을 통해 저유소 폭발 사고를 낸 혐의로 20대 스리랑카 근로자 A(27)씨를 조사 중이다.

A씨는 지난 7일 오전 10시 55분께 저유소 주변 야산 강매터널 공사장에서 풍등을 날려 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가 날린 풍등이 저유소 주변 잔디밭으로 떨어지며 불이 붙었고, 여기서 발생한 불씨가 저유소 유증환기구에 유입되면서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폭발사고 10~20분 전 풍등을 날린 것으로 확인됐으며, A씨는 풍등을 날린 혐의를 인정하고 “호기심에 날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종익 고양경찰서 형사과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풍등과 저유소 화재간 인과관계를 정밀 확인하고 재차 합동 감식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대한송유관공사와 터널공사업체 관계자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대한산업안전협회 “효과적인 화재예방을 위해서는 위험기반 규제로의 전환 시급”
이번 사고와 관련해 대한산업안전협회는 저유지 등 대형 위험물 시설에서의 화재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려면 기존의 화재 방호 개념인 결정론적 접근방법(Deterministic Approach)에서 탈피해 심층방호(Defense in Depth) 기준 도입 및 위험 기반 규제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원국 협회 안전기술연구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위험물 관리는 법규 및 기준에 의한 이른바 결정론적 접근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개념의 바탕이 되는 화재방호 기술기준이 현재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아 다양한 위험요소에 취약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 원장은 성능이 입증된 방호시스템과 화재 예방을 비롯해 탐지, 소화, 전파 방지 등과 같이 화재 전주기에 대한 방호를 가능하게 하는 심층방호(Defense in Depth)개념의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세계적인 추세에 걸맞은 위험기반 규제로의 전환도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영국의 경우 2004년 이미 위험기반 규제로 전환하여 규제완화와 더불어 사고에 대한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라며 “국내의 경우 사전에 경험한 화재 및 단순한 화재 대응에만 효과적인 결정론적 규제 방식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어 이번 저유소 폭발사고의 경우 대처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김 원장은 “법규 및 기준 충족에만 급급한 결정론적 법적 규제 방식에서 벗어나 위험성 평가에 따른 안전 관리를 추진해 나아갈 때 적극적으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5년간 위험물 안전관리 위법사항 매년 증가 추세…위법 사항에 대한 처벌 강화해야
이번 사고로 위험물 시설 안전관리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전국 위험물 시설에서 안전관리 위반사항으로 적발돼 입건.과태료.행정명령 등의 처분을 받은 건수가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병관(더불어민주당)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위험물 시설 안전관리 실태 점검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감독당국에 의해 적발된 위험물 시설의 위법사항은 입건 876건, 과태료 2839건, 행정명령 6117건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는 ▲2014년 1569건(입건 153, 과태료 415, 행정명령 1001) ▲2015년 1922건(입건 182, 과태료 505, 행정명령 1235) ▲2016년 2122건(입건 219, 과태료 691, 행정명령 1212) ▲2017년 2470건(입건 190, 과태료 704, 행정명령 1576) ▲2018년 1746건(입건 132, 과태료 524, 행정명령 1090) 등이다. 올해의 경우 지난 8월 31일 기준으로 집계된 자료임을 감안하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각종 처분 건수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안전관리 소홀 등으로 안전관리자가 가장 많이 입건된 지역은 경기도(220건)로 나타났다. 이어 인천과 경북이 각각 105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과태료 처분은 경북(394건)이 가장 많았고, 그 뒤로 부산(328건), 경기(319건), 인천(291건), 울산(220건) 순으로 집계됐다. 행정명령 처분의 경우 서울(2075건)과 경기(1241건)가 전체(6117건)의 54%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김병관 의원은 “고양시 저유소 폭발화재사고와 같이 위험물 시설에서 화재폭발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라며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안전관리 위법사항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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