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에 대한 발주자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규정해야

안홍섭 군산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 한국건설안전학회장


올해 창립된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안전보건계에 큰 화두를 던지고 있는 학회가 있다. 건설사업의 생애주기에 걸쳐 안전, 보건, 환경, 품질분야의 학문과 기술발전을 통합적으로 추진하는 한국건설안전학회가 바로 그곳이다.

한국건설안전학회는 태생부터 남다르다. 일반적인 학회는 학계가 주도해 만들지만 건설안전학회는 건설업계 관계자들이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창립됐다.

끊이지 않는 건설업 재해를 예방‧저감하고, 열악한 건설업 안전관리자들의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건설안전에 특화된 학회가 필요하다는데 업계 전반의 의견이 모인 것이다.

건설안전학회는 창립 이후부터 매달 1~2차씩 주제별 세미나를 개최하고, 건설안전에 관한 연구를 단기, 중‧장기로 나눠 실시하는 등 건설안전분야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본지는 한국건설안전학회를 이끌고 있는 안홍섭 군산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를 만나, 앞으로의 학회운영방향과 건설업 재해예방을 위한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올해 2월 한국건설안전학회가 공식 창립했습니다.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국건설안전학회는 지난해 정부의 인가를 거쳐 올해 2월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건설안전학회의 필요성은 1990년대 초반부터 제기되었는데, 이제야 발족이 되어 늦은 감이 있습니다. 늦게 시작한 만큼 건설산업과 건설안전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에 나설 계획입니다.

창립 첫해인 올해는 건설안전의 해묵은 과제들을 정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학회는 출범 이후 최근까지 8차의 세미나를 주최하여 건설안전의 현안을 주제별로 정리하여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하반기에도 주제별 세미나를 이어 나가는 가운데, 11월에는 학술대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내년 이후에는 중장기적인 연구를 통해 안전을 기반으로 건설산업의 부정적 이미지를 바꿔나가는 등 건설산업이 정의롭고 행복한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려 합니다.
 

◇안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안전이라는 것이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 ‘무엇이 우리를 해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학습하고 인지된 위험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노력을 경주하는 동적인 노력’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100% 안전한 상황, 사고 가능성이 0%인 상황은 없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바로 안전인 것입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산업재해의 원인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원인분석이 가능하다면 이에 맞춰 예방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겠죠. 그렇게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먼저 제도나 정책들이 안전의 기본원리에 충실한가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안전제일의 원칙 말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여전히 우리사회에서는 생명을 담보로 한 생산(제품)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사회 전반적인 안전의식 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안전은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했습니다. 산재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방치한 최상위 의사결정자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미약합니다.

마지막으로 안전분야 인프라는 다른 산업에 비해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제3자 감시 원칙에 의한 점검과 감독이 통상적으로 이뤄지지만 우리나라에 서는 이에 대한 인프라가 거의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안전분야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제도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만큼 많습니다. 물론 이것들이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산업현장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지 방향의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건설업 재해예방을 위한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서 말씀드린 산재원인 가운데, 책임 부분을 강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건설업은 기본적으로 발주자, 원청사, 협력업체, 근로자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건설현장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발주자입니다. 발주자의 지시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구조입니다.

문제는 그동안 발주자에게는 안전에 대한 책임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제조업을 기준으로 정립된 탓에 다단계 도급체계인 건설업에서 발주자에 대한 책임을 묻기 힘들었습니다. 사실상 발주자를 통제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동안 건설업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대책들이 수립‧시행됐지만 큰 효과는 거두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어진 프레임이 잘못됐는데, 그 안에서 계속 해답을 찾고 있던 것입니다. 프레임을 바꿔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최근 들어 발주자에 대한 안전관리 책임과 역할을 강화하는 분위기에 있습니다. 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면 개정을 추진하면서 발주자에 강한 책임을 지우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는 분명 환영할 만한 것입니다. 다만, 세부적으로 발주자에게 공사 계획‧설계‧시공 단계별로 의무를 신설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어떻게 실효성을 확보해 나갈 것이냐의 문제는 또 다른 숙제입니다. 안전 관련 제도가 본래의 취지대로 작동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모두가 보편적 원리와 원칙을 기준으로 제도를 평가하고, 실질적인 이행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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