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벨 미작동·스프링클러 미설치…예견된 人災
李총리, 화재안전시설 설치 법령 개정 검토 지시
시민단체, “주거취약계층 거주시설에 대한 화재안전기준 강화해야”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나 총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찰 소방 관계자가 화재감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지난 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나 총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찰, 소방 관계자가 화재감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이미지 제공 : 뉴시스)


지난 9일 서울시 종로구의 한 고시원 건물에서 화재가 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을 입는 등 총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화마(火魔)에 목숨을 잃은 이들 대부분이 5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의 일용직 근로자 등 주거취약계층이었던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화재는 이날 오전 5시께 종로구 관수동 인근 지상의 고시원 건물 3층 출입구 쪽에 위치한 301호 전열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이 붙기 무섭게 고시원은 삽시간에 검은 화염에 휩싸였고, 그 여파로 고시원 거주자 7명이 숨지고 11명이 화상 등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고 직후 소방당국은 소방대원 173명과 경찰 40명 등 총 236명을 투입해 진화작업에 나섰으며, 화재 2시간 만인 오전 7시께 완전히 진압했다.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신속한 진화에 나섰음에도 인명피해가 컸던 이유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데다가 건물 내 유일한 출입구 쪽에서 불이 나면서 거주자들의 대피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전기 히터, 콘센트, 주변가연물 등을 수거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라며 “앞으로 화재원인 수사와 함께 건축관련법, 소방관련법 위반 등에 대해서도 적극 수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火災 고시원, 소방안전관리자 선임 대상서 제외
화재가 발생한 고시원은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하지 않아도 되는 건물로 확인됐다. 즉 제도적인 허점도 이번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해당 건축물은 1983년 8월30일에 사용승인을 받았으며 사용승인당시 소방법령상 방화관리자를 둬야 하는 특수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며 “다시 말해,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하지 않아도 되는 건물”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600㎡ 이상의 복합건축물에 해당되면 건물주가 소방안전관리자를 선임해야 하는 현행 법적 기준을, 법 시행 이전 건물에도 모두 소급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전형적인 人災
지난 10일 진행된 합동수사본부의 1차 감식 결과 화재경보기의 경보벨이 의도적으로 차단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이번 화재 역시 일상 속 안전불감증이 부른 전형적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합동감식에 참여한 소방당국의 한 관계자는 “감식 중 자동화재탐지 설비 수신기에 경보벨이 작동되지 않도록 ‘주경종버튼’과 ‘지구경종버튼’이 눌려있는 것이 보였다”고 말했다. 참고로 주경종.지구경종 버튼이 눌려있으면 화재 위험이 감지 돼도 경보벨이 울리지 않는다.

다만, 소방당국은 불에 의해 경보벨 장치가 자동적으로 눌렸을 가능성과, 거주자들이 대피 도중에 또는 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해 해당 장치를 꺼놨을 가능성도 있기에,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각도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시민단체, “주거취약계층 거주시설에 대한 안전점검 및 관리 강화해야”
이번 화재의 피해자 대부분이 일용직 근로자로 나타나면서 주거취약계층 거주시설의 화재 위험성 문제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빈곤사회연대 등 18개 주거.빈곤.종교.시민단체는 화재 발생 이튿날인 지난 10일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건물 화재는 주로 기존 노후 건축물에서 발생하는데, 화재 안전 대책 등은 신규 건축물을 기준으로 마련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화재가 난 고시원도 2009년 다중이용시설의 스프링클러 설치 규정이 법제화되기 이전인 2007년부터 영업한 건물이라는 이유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라며 “주거취약계층 거주시설에 대한 화재 안전기준을 강화하고, 기존 건축물에도 소급 적용해 안전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李총리, “화재안전특별조사 시 고시원·쪽방 등 취약층 시설 우선 점검”
화재의 심각성을 감안, 정부도 신속히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불이 난 고시원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면제 시설인데다 국가안전대진단과 올 7월부터 진행된 화재안전특별조사도 받지 않았다”면서 “행안부와 소방청 등 관계부처는 법 시행 이전부터 영업해온 시설도 스프링클러 같은 화재안전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법령 개정이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지자체는 오래되고 취약 계층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의 스프링클러 설치를 지원하는 방안도 강구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또 “내년 말까지 계속되는 화재안전 특별조사에서는 노후 고시원과 숙박업소, 쪽방, 비닐하우스 등 취약계층 거주시설을 우선 점검하도록 조사 대상과 내용을 보완하고, 그 이행 과정도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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