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Column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임현교 충북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작년, 그러니까 2018년 5월 1일 오후 5시 무렵, 전남 영암군 신북면 주암삼거리 인근 도로에서 미니버스 한 대가 같은 방향을 달리던 SUV 차량과 충돌한 후, 우측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도로 옆 3m 아래 밭고랑으로 추락했다. 이 버스에는 운전기사와 들일을 하러 다니던 어르신 등 15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 사고로 미니버스 차량 운전기사 이모(72)씨 등 8명이 숨지고, 나머지 미니버스 탑승객 7명과 SUV 차량 탑승객 4명 등 11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얼핏 그냥 듣고 지날 수 있는 뉴스이기는 했지만, 그 뉴스를 접하면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가 한꺼번에 얽혀 해를 넘기면서도 내내 필자의 가슴에 남아 있었다. 아마, 지난 겨울 내내 답답했던 것은 뭔가 풀어내지 못한 그 응어리 때문이었을 것이리라. 그런데, 평생의 계획은 청년기에 세우고,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세우라고 했던가. 해를 넘기고 정월을 지나면서 머릿속이 정리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다음은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독자 여러분들이 이해해 주시길―.

첫 번째 느낀 점은 고령자의 노동에 대하여 아직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대법원에서는 우리나라 근로자의 노동수명은 65세라고 판결한 바 있다. 60세 회갑을 맞게 되었다고 동네방네 사람들을 모으고 소리꾼을 불러 하루종일 잔치를 하셨던 내 조부님이 들으시면 기가 막히실 거다. 건강하고 벌어 놓은 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생계도 막막하고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는 데다 돈벌이도 할 수 있어서, 자식들이 보내오는 용돈을 마다하고 동네 분들과 어울려 일하러 다니는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두 번째는 운전자의 과로로 인한 교통사고 문제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사고 미니버스는 SUV 차량과 부딪히기 전 약 15초간 1차로와 2차로를 넘나들며 갈 지(之)자 운행을 하며 불안하게 움직였고, 마침내는 2차로에서 비틀거리면서 주행하다가 1차로로 가던 SUV 차량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시 2차로로 돌아간 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며 약 6초 동안 200m 가량 더 달리다가 가드레일, 가로수, 가로등을 연이어 들이받고 도로 3m 아래 인삼밭으로 추락했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충돌 뒤 중심이 흔들리면서 가드레일에 충격할 때까지 발생한 30m 길이의 스키드 마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무엇이 운전자로 하여금 과로운전을 하게 만들었을까.

셋째, 아직도 안전벨트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버스 내부에는 운전자 포함 4명이 차량 안에 있었다고 한다. 어떤 병원에서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응급실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하고 있던 어떤 어르신(82·여)은 사고 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 “몰라. 몰라”를 연신 반복하던 중, 당신은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스스로 차량 밖으로 탈출한 분들도 있었겠지만, 행여나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지 않았던 다른 분들은 차량 밖으로 튕겨 나갔던 것은 아닐까.

넷째, ― 그나마 이 점은 다행인데 ― 사고 피해자들이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해당 사고와 관련된 미니버스가 영업용이 아닌 자가용 차량으로 등록되어 있었다는 점, 자가용이지만 요금을 받고 운행했다는 점, 비법인 개인농업장에 출퇴근하는 과정에서 난 재해라는 점, 업무 중에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퇴근 길에 발생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산재는커녕 보험금도 받기 어려울 거라는 시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안에도 불구하고,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했다는 점은 피해를 당한 분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아닐까.
근년 우리나라의 노동계에서는 산업재해를 전향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사업주가 제공하는 통근버스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출퇴근 사고를 산재로 인정했지만, 지난 2018년 1월 1일부터 산재보상보험법이 개정돼 통상적인 경로를 이탈하지 않는 한 출퇴근 중의 사고에 대해서도 폭넓게 산재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작년 9월 19일에는 1인 자영업자 산재보험 특례적용 업종에 음식점업과 도매업·소매업·기타 개인서비스업 등 4개 자영업종이 추가된다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어, 금년부터는 치킨집이나 김밥집, 옷가게, 대중목욕탕 사장님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다 앞으로는 산재보험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는 직종의 범위를 기존 ‘근로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확대 적용한다고 한다. 근로자로 규정했을 때 혜택 받지 못하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등을 보호대상에 포함하기 위해서란다.

이 모든 게 우리 사회가 일할 맛 나는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솔깃한 소식 아닌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안전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준 사고였지만, 한편으로 밤낮없이 가족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땀 흘리는 사람들이 정당하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나라가 한층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는 거 같아, 봄을 맞는 마음 한 쪽이 한결 가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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