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작업 금지지침에 대한 소고
사다리작업 금지지침에 대한 소고
  • 승인 201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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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교수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고용노동부에서 올해부터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사다리작업 금지지침을 놓고 현장에서 많은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청와대에 청원이 제기되는 등 현장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많은 비판에 직면한 이후 고용노동부가 최근 지침의 내용과 적용을 일부 완화하겠다고는 밝혔지만, 미봉적인 데다가 명확하지 않고 일관성이 없는 상태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번 지침(최근의 완화된 해석과 적용을 감안하더라도)은 실체적 측면과 절차적 측면 모두에서 매우 잘못되었다. 의욕만 앞세운 비전문성이 초래한 또 하나의 대표적인 정부 실패이다.

안전대책은 리스크에 기반하여야 한다. 리스크가 수반된다고 하여 해당 작업을 아예 금지하는 것은 매우 단선적인 접근이다. 리스크에 기반하지 않는 접근은 비효율적이고 비현실적인 정책을 생산하게 된다. 게다가 안전규제 전체에 대한 부정적이고 시니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영국, 미국, 일본 등 안전선진국 어느 나라도 사다리작업 자체를 무조건 금지하고 있지 않다. 사다리작업이라 하더라도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면서 허용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입법례이다. 영국의 경우 사다리에서 일시적인 작업을 하거나 낮은 위험의 작업을 하는 것이 명시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미국, 일본의 경우에는 1.8m, 2m 이하 높이에서의 작업에 대해서는 사다리에서의 작업도 일정한 조건하에 허용되고 있다.

비계를 설치할 수 없는 비좁은 곳에서, 바닥이 경사진 곳에서, 높낮이 조절이 필요한 곳 등에서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고는 사다리에서 작업하는 것을 금지한다거나 아주 일시적인 작업 또는 낮은 높이에서 작업을 할 때에도 안전대 착용 없이 사다리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모든 기업을 범법자로 만드는 것이며 오히려 작업위험을 높일 수 있다.

작업성과 효율성을 무시한 안전대책은 현장에서 이행되지도 이행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안전대책 전체에 대한 신뢰와 규범력을 무너뜨리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고용노동부는 현행 안전보건규칙상의 사다리 관련 규정이 옳다는 전제하에 사다리 지침이 문제 없다는 반응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행 안전보건규칙 자체에 많은 문제가 있다. 추락방지를 위한 기술적 안전조치의 대상인 2m라는 기준을 아무런 대안 없이 삭제하는 바람에 2m 이하의 작업, 예컨대 아무리 낮은 높이에서의 작업이라 하더라도 추락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술적인 안전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무리한 해석이 도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업발판에 설치되는 안전난간이 안전보건규칙 제13조의 안전난간 기준을 충족하여야 한다는 것도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합리한 규정이자 해석이다. 

법규 자체가 현실적으로 준수할 수 없는 것이면 신속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개정되기 전까지는 무리가 없는 범위에서 해석을 하는 등 유연하고 실효성 있게 대응하는 것이 행정의 역할이자 책무이다. 악법적인 규정인데도 법령에 규정되어 있으니 무작정 준수해야 한다는 태도는 실질적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비현실적인 기준은 밀어붙인다고 하더라도 고의가 성립되지 않거나 기대가능성이 없어 법 위반으로 처벌되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혼란만 초래할 뿐 행정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행정절차법(제46조)에 따르면 많은 국민에게 불편이나 부담을 주는 사항은 행정예고를 하여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되어 있다.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정책의 민주성뿐만 아니라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사다리작업 금지지침은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다 보니,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현실과 턱없이 괴리된 지침을 내놓게 된 것이다. 중요한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 응당 거쳐야 할 외국사례 파악과 현장조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행정은 책임윤리가 요구되는 직업이다.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에 대해 온당히 책임을 지는 것이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