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사고는 불행한 사상(事象)이 관련되었을 때에 일어난다. 각 사상에도 그 배후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안전행동 또한 여러 가지 요인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는 것이므로, 눈에 보이는 것만을 채택하고 즉흥적인 대책을 강구하는 것만으로는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

SHEL 모델을 예로 들어 말하면, L과 SHEL의 어디에 미스매치가 있었는지, 어떠한 배후요인이 있었는지, 나아가 조직의 풍토, CEO의 태도는 영향이 없었는지와 같은 부분까지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찾아 당면 문제와 함께 가능한 한 근본적인 부분까지의 대응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장소를 바꾸어, 사람을 바꾸어, 시간을 바꾸어 머지않아 유사한 불안전행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불안전행동을 분석할 때 고민스러운 것이 ‘어디까지 분석하면 좋을까’라는 것이다. 이 ‘어디까지’라는 것에는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좋을까’라는 것과 ‘어디까지 정확히 분석하면 좋을까’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분석하는 목적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면, 형사벌, 행정벌 등과도 관계가 있는 사고·재해분석의 경우에는 최대한 정확한 분석을 하고 단정(사실)과 추정(추찰)을 준별하여 표기할 필요가 있다. 반면, 제재(불이익)로 연결되지 않는 아차사고나 경미한 재해 분석의 경우는 요구되는 엄밀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것이다.

불안전행동을 분석해 갈 때 아무리 해도 추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의 원인, 사실관계라고 하는 단어에 너무 집착하면 운신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불안전행동의 분석은 엉성하게 이루어져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가능한 한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 당연히 요구된다. 부적절한 분석은 부적절한 대책을 수립하게 하고, 나아가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을 초래하게 된다.

다만, 불안전행동 분석은 ‘범인 찾기’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분석함으로써 불안전행동의 재발을 방지하는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원인을 단정할 수 없고 추정이라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경우, 어느 정도까지 정확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해서는 민사소송의 인과관계 증명, 증거의 접근방법이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민사소송이란 당사자 간의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법률관계를 서로가 납득하는 형태로 매듭짓는 것이 목표이다. 이것에 입각하여 학설, 판례를 기초로 민사소송에서의 인과관계 입증이라는 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 점의 의혹도 허용되지 않는 자연과학적 입증이 아니라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특정 사실이 특정 결과발생을 초래한 관계를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며, 그 추정은 통상인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로 진실성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원래 민사소송상의 증명은 자연과학자가 자주 이용하는 실험에 근거한 ‘논리적 증명’이 아니라, 소위 ‘역사적 증명’이다. 논리적 증명은 ‘사실’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에 반하여, 역사적 증명은 ‘사실의 고도의 개연성’을 가지고 만족한다. 바꾸어 말하면, 통상인이라면 누구라도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로 진실답다는 확신을 얻는 것이면 증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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