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이 병원 내 괴롭힘, 이른바 ‘태움’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선욱 간호사의 유족이 제출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 사건에 대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공단에 따르면 6일 열린 심의회의에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유족과 대리인의 진술을 듣고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 과중한 업무에 따른 부담이 극단적 선택을 불러왔다고 판단했다.

당시 위원회는 고인에 대해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인데다, 신입 간호사로서 업무를 더욱 잘하려고 노력했으나 중환자실 근무에 대한 업무상 부담이 컸다”면서 “직장 내 적절한 교육체계나 지원 없이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여 피로가 누적되고 우울감이 증가하여 자살로 이어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비록 태움에 의한 자살이라는 유족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은 상당히 아쉽지만, 그래도 병원 내 구조적 문제로 촉발된 자살에 대해 산재를 인정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만하다. 앞으로 동일·유사직종 사건의 산재 여부 판단에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 박선욱 간호사의 산재 판정에 하루 앞선 5일에는 환경부가 환경미화원의 안전보건을 크게 강화한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을 전국 지자체에 통보했다. 환경미화원의 작업시간을 야간에서 낮으로 바꾸도록 권고하고, 청소차량에 작업자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장치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 이 지침의 핵심이다. 이와 함께 환경미화원이 작업을 할 때는 안전인증을 받은 ▲경량안전모 ▲안전조끼 ▲안전화 ▲절단방지장갑 ▲보안경 ▲방진마스크 등을 착용토록 규정했다. 이 모두 새벽과 야간의 어두운 환경에서 작업하다가 수면 부족, 피로 누적 등으로 발생하는 환경미화원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라고 할 수 있다.

본지는 지난 1월 21일자 안전저널 제423호 사설(‘안전 일터 만드는 첫걸음은 직장 내 괴롭힘 근절’, ‘쾌적한 삶을 원한다면 그들의 안전부터 챙겨주자’)을 통해 병원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환경미화원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전하고 이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그로부터 약 두 달 만에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나름 진일보한 소식들을 듣게 되어 다행스럽다. 허나 여전히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큰 것이 사실이다.

먼저, 앞서 언급했듯 근로복지공단이 아직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재’에 대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럽다. 정부는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성을 인지, 지난 1월 15일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고 예방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개정 근로기준법을 공포했다. 다시 말해, 관련 법까지 강화됐는데, 정작 그 실행 및 후속조치는 약해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면 어느 누가 제도의 진정성을 믿겠는가.

또 환경미화원을 위한 작업안전 지침도 현 상황에서는 반쪽짜리나 다름없다. 지침의 내용은 훌륭하나 권고에 불과하다보니, 강제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과연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을 발휘할지 우려스럽다.

환경부에 의하면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의 법제화가 완료되면 법에 근거한 구속력이 있는 별도의 안전기준과 안전지침(고시 형태)으로 관리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서둘러 준비에 나서 신속히 추진해 주길 바란다. 2015년에서 2017년 3년 동안 작업 중 안전사고를 당한 환경미화원이 1822명에 달하며 그중 18명은 숨졌다. 절차를 따지며 머뭇거리기엔 상황이 너무나 심각하다.

고 박선욱 간호사의 산재 판정과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 제정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흐름은 더디지만 분명히 사람의 안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방향이 꺾이지 않고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주요 안전 이슈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변화를 원하면 지켜보고 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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