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산업안전보건법은 불가역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법이니만큼, 법위반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 시정명령을 비롯한 행정명령이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 중 하나이다. 벌칙(형사처벌, 과태료)이 법을 위반한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인 반면, 행정명령은 산업재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벌칙과 별개로 현재의 문제 있는 상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시정(개선)명령, 사용중지명령, 작업중지명령, 안전보건진단명령, 안전보건계선계획명령 등 다양한 행정명령(행정처분)이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행정명령이 실체적 요건과 절차적 요건에 적합하지 않게 발령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권력이 행정대상의 권익을 제한하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적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적법절차의 원칙은 형사절차상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행정명령과 같은 공권력의 작용에도 적용된다.

이 적법절차의 원칙은 헌법적 효력을 가지며 행정처분절차에도 적용되는 것으로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는 행정명령은 절차상 위법하게 된다.

현행 행정절차법은 모든 행정작용에 관한 일반법으로서 행정명령에 대해서도 거쳐야 할 여러 행정절차를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으나,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발령되는 행정명령 실태를 보면, 행정절차법상의 행정절차를 거치는 않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현행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행정청으로 하여금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명령)을 하는 경우에는, 당해 처분에 대하여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는 뜻과 의견을 제출하지 아니하는 경우의 처리방법, 의견제출기한 등을 미리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하고(행정절차법 제21조 제1항), 행정청이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할 때는 당사자에게 의견제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행정절차법 제22조 제3항). 이는 형사절차상의 기본적 원칙인 미란다 원칙(Miranda rights)에 해당한다.

사전통지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 행정청은 처분을 할 때 당사자 등에게 통지를 하지 아니한 사유를 알려야 한다. 다만, 신속한 처분이 필요한 경우에는 처분 후에라도 그 사유를 알려야 한다(행정절차법 제21조 제6항).

또한 행정청이 처분을 할 때에는 당사자에게 그 처분에 관하여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 그 밖에 불복을 할 수 있는지 여부, 청구절차·기간,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알려야 하고(행정절차법 제26조), 행정청은 당사자가 말로 의견제출을 하였을 때에는 서면으로 그 진술의 요지와 진술자를 기록해야 한다(행정절차법 제27조 제3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지방고용노동관서에서 광범위하게 내려지고 있는 작업중지명령, 안전보건진단명령, 시정명령 등 행정명령의 실제를 보면 행정절차법에서 정하고 있는 위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용노동부(본부)의 지침에서 행정절차에 관한 일반법인 행정절차법상의 행정절차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나 언급을 하지 않다 보니, 지방고용노동관서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절차규정만을 생각하고 행정절차법상의 절차규정은 도외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본적으로 행정절차의 일반법인 행정절차법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하고, 행정의 민주화 및 적정화, 국민 권익의 보호의 요청 등에 대한 마인드가 미흡한 것에 기인한다고 판단된다.

적법절차의 원칙은 법적 요구사항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정기관이 기업 등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정책의 실효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요구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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