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Column

정성효 대림산업 안전품질실 기술안전팀
정성효 대림산업 안전품질실 기술안전팀 부장

 

‘시중지도’ 지인의 SNS 프로필에서 우연히 발견한 글귀다.

중용에서 ‘그때에 맞는 도리’라는 뜻으로 쓰인 저 글귀를 보는 순간 한 문장이 떠올랐다.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정의)’라는 책의 부제로 쓰였던 화두(話頭)이다.

‘JUSTICE’는 하버드대 정치학과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수백만 부가 팔렸던 베스트셀러이다.

샌델 교수는 정의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관점과 도덕적 딜레마 상황을 제시하여 정의에 대한 깊은 사고(思考)를 유도한다. 샌델 교수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전통과 규범 속에 있는 인간은 공동체가 기대하는 정의를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고, 보편적 자유를 내세워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공동체적 정의관을 가지고 있다. 정의를 크게 구분하여 공동체적 정의와 보편적 자유주의로 나눈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정의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샌델 교수는 보편적 자유주의를 경계하며 어떤 공동체에서 발생한 도덕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진짜 좋은 것’에 대한 논의가 가장 선행되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보편적 자유주의가 표방하는 개인의 자유와 공정성, 권리 주장이 오용될 때 나타날 수 있는 혼란을 우려한 것이다. 샌델 교수가 우려했던 일이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정의와 공정성을 주장하며 자기 몫을 요구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함께 사육해서 얻은 황금알을 지분별로 나눠가지던 일을 멈추고 거위의 배를 갈라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자는 격이다. 죽은 거위의 뱃속에 황금알이 있을 턱이 없고, 더 이상 황금알을 생산할 수도 없으니 결국 거위와 함께 모두가 공멸하는 길로 가는 안타까운 일이다.
고용과 생산현장에 보편적 자유주의를 적용하려면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이 근로자나 근로 희망자 그리고 고용주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개인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바탕에서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모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는 큰 목소리와 집단행동에 의해 선동되는 사이비 정의이다. 우리 사회에서 집단 이기주의와 법질서를 무시하는 세태를 의미하는 신조어로 ‘떼법’이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우려스러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샌델 교수는 자제와 절제가 바탕을 이룬 ‘시민적 덕(civic virtue)’을 강조한다.

저마다 보편적 자유만 주장하며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 결국 모두가 공멸하게 되니 공동체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 ‘진짜 좋은 것’에 대한 합의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하나는 시대적 변화에 부합하는 ‘시중지도(時中之道)’와 우리나라의 지금 상황에 맞는 ‘시중지도(市中之道)’이다.

무수한 단체와 개인들의 주장 중 진실로 억압되고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는 경청하여 개선하고, 억압을 가장하여 사익을 추구하는 선동의 구호는 가려내어 순화(醇化) 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무시와 불통을 적극적 경청의 태도로 전환하여 이 시대와 이 사회에 적합한 ‘진짜 좋은 정의’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현장의 노조 집회장에서 두려움과 분노, 불안감과 투지, 서운함과 미안함... 그런 무수한 감정들이 오버랩된 노사 모두의 막막한 표정과 지친 눈빛을 보면서 느껴지던 감정은 그 모두에 대한 연민이었다. 결국 그 모든 주장은 근원적으로 보다 더 안전한 삶을 바라는 인간의 생존 욕구에서 나온 것이라는 자각에서 연민의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삶에 대한 두려움의 방어기제로 나타난 분노에 휩쓸려 대치하고 있는 서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다툼을 멈추고 서로를 배려하고 보호하며 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또 한 가지는 ‘헬조선, 메멘토(Memento), 엽전, 김치×...’같은 자기 비하나 비관, 불신, 증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의 진의는 시기심이 아니라 귀한 땅을 얻은 사촌에게 가난한 친척이 인분(비료)이라도 선물하려던 애틋한 축복의 의미였다. 국민적 자존감(自尊感)을 말살시키려는 의도로 부정적으로 철저하게 왜곡된 저 속담처럼 뿌리 깊게 주입된 자기 비하의 무력감에서 벗어나 자긍심(自矜心)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으로 언제나 서로를 배려하고 축복하던 사람들이다.

새뮤얼 울먼의 시 ‘청춘’의 일부이다..

Worry, fear, self-distrust bows the heart and turns the spirit back to dust.
걱정과 두려움과 자기 비하가 정신을 파괴하고,

In the center of your heart and my heart there is a wireless station: so long as it receives messages of beauty, hope, cheer, courage and power from yourself, your peers, and from the Infinite, so long are you young.
우리 가슴속 영감(靈感)의 통로를 통해 동료와 우주가 보내오는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그리고 자긍심의 메시지를 수용할 때 우리는 언제나 청춘이다.

인간적 관점에서 본 정의(正義)의 본질은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행하지 않고, 내가 바라는 것을 남에게 베푸는 인성(仁性)’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며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사랑을 베푸는 인(仁)이 가슴으로 전해져, 몸으로 행할 때 우리 사회는 모든 구성원이 좀 더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건강한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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