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과 알더퍼의 ‘ERG이론
영화 ‘기생충’과 알더퍼의 ‘ERG이론
  • 승인 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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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fety Column
정성효 대림산업 안전품질실 기술안전팀
정성효 대림산업 안전품질실 기술안전팀 부장

 

영화 ‘기생충’이 천만 관객을 바라보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관람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최고의 평점을 받고 있다. 이 시대의 시대정신과 부합되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대중적 공감을 얻고 있는 이 영화가 이 세상으로 보내는 ‘안전’에 대한 메시지가 있다.

안전관리의 4M 중 가장 중요한 바탕을 이루고 인적(Man) 요소의 핵심은 인간의 욕구이다. 심리학자 알더퍼는 ERG이론에서 인간의 욕구가 확장되는 단계를 존재(Existence), 관계(Related), 성장(Growth)의 세 단계로 설명했다. ‘인간은 생존과 안전을 확보하여 존재의 욕구가 해결되어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추구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통해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기생충’에서 인간 사회의 가치교환 수단인 돈의 속성에 대해 표현한 대사이다.

“돈은 사람의 구김살을 펴주는 다리미 같은 거야! 착하니까 돈이 있는 게 아니고 돈이 있으니까 착한 거야. 나도 돈만 있으면 착해질 수 있어...”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부자는 구김살 없이 밝고 착할 수 있지만, 당장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옹색하게 구겨진 모습으로 악착같이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모함하여 쫓아내고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가족의 대화이다.
“그 사람들 잘 살고 있을까?”
“젊고 건강하니까 다른 데 취직했겠지...”
“남 걱정하지 말고 제발 우리한테 좀 집중해!”

이 영화는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위험한 뇌관인 부의 양극화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해학을 통해 감정적 격앙의 안전선을 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한 수많은 느낌과 해석이 있고, 그 모두가 나름의 일리가 있지만 안전을 업으로 하고 있는 필자는 이 영화에서 우리 사회의 ‘균형과 조화’에 대한 메시지를 보았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대부분은 서로 일방적 기생(寄生)이나 숙주(宿主)의 관계가 아닌 각자의 역할을 통해 서로를 지원하는 상보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전체 사회구조 속에서 저마다 각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 역할 또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이 영화가 ‘균형과 조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많이 불편하고 아프다. 영화 속에서 부자는 운전도, 음식도,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에도 모두 서툴지만 자본을 가졌고 돈을 버는 사업에 능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서툰 일상생활의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여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한다. 그렇지만 자신을 돕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없고, 그들을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해고하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도 되는 도구처럼 취급한다. 마치 자신이 버는 돈에 기생하는 듯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부자의 부적절한 측면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숙주가 기생충을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가 숙주이고 누가 기생충인지 관계가 모호하다.

영화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적 기반이 없고 돈을 버는 사업 수완도 없지만 저마다 잘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재주로 어리숙한 부자를 속이고 이용하면서 자신들과 생존을 다투는 경쟁자에게는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화한다. 자신들의 노고에 기생하는 듯한 부자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며 적대시하는 빈곤층의 부적절한 측면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또한 숙주가 기생충을 혐오하는 것 같지만 과연 누가 숙주이고 누가 기생충인지 관계가 모호하다. 기생과 숙주의 역할이 어떻게 형성되든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함께 죽기 때문에 기생충은 숙주를 살려야 하지만 영화에서는 경멸과 적개심이 터져 나와 함께 파멸하는 파국으로 간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파국과 같은 일이 지금 우리 사회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온 세상 곳곳에서 사회적 충돌로 생산기반이 상실되고 역할 관계가 파괴되어 함께 공멸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그것이 이 영화에 많은 국가의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영화 속의 모든 장면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기질을 가진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 일상에서 마주치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 인간이 인간에 대해 지켜야 할 기본적 예의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서로에 대해 얼마나 예의를 지키느냐에 따라 기생(寄生)과 공생(共生), 상생(相生)의 관계가 형성되는 곳이 인간 사회이고, 사회구조 속의 모든 구성원들은 서로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사(NASA)를 방문한 케네디 대통령에게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에 청소를 통해 동참하고 있는 자신의 자긍심’을 자랑했던 청소부처럼 어떤 역할이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수행하면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경제적 문화가 필요하다. 자신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질 때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고 우리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 극단적 분열과 반목으로 절망이 창궐하고 있는 이 시대의 인류에게 영화 ‘기생충’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상극(相克)에서 벗어나 ‘균형과 조화’를 통해 상생할 수 있는 활로를 제시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도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할에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통해 생존의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때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우리 삶과 우리 사회가 존재하는 근본 바탕이 되는 안전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최우선의 가치이다. 극단적 분열과 반목에서 벗어나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안전의 근원적 토대를 회복할 수 있다.

“Never, Never, Never give up -윈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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