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우리나라는 일제 해방 후 과학기술과 그 운영법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차원의 검토와 논의 없이 외국, 특히 일본의 그것을 한 세트로 직수입하여 왔다. 그러다 보니 과학기술과 운영법규에 대한 기초와 토대가 허약한 상태에서 그것의 배경과 취지 등에 대한 이해 없이 안전법제를 맹목적으로 운영하거나 준수하도록 하는 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다시 말해서, 안전에 관한 법제의 디자인은 선진국의 그것을 모방해 이식하였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조차 법규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기업을 대상으로 안전법규를 왜 준수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실제로는 준수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법규는 무조건 준수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밀어붙이기 일쑤였다. 그 결과 기업은 안전법규를 맹목적으로 준수하는 ‘수동적 사고’가 기본자세로 굳어져 왔다.

정부는 안전법제를 제.개정하고 수규자가 그것을 준수하지 않으면 처벌하는 것으로 정부의 책무를 다하였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기업이 안전법규를 당초의 취지대로 잘 준수할 수 있도록, 즉 사고예방을 선제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확충하는 노력은 등한시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이 오로지 기업에게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감독기관은 매스컴에 크게 보도되지 않는 이상 이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감독기관에 대하여 실제로 법적.행정적 책임을 묻는 경우도 대형사고가 아닌 이상 없어 왔다. 오히려 안전법규 위반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감독기관의 책임을 면피하려는 측면까지도 엿보인다. 

기업과 국민은 “안전법규는 준수하여야 하는 것이다”라는 막연한 인식은 가지고 있지만 그 구체적 내용과 준수방법에 대해서는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안전법규를 형식적으로만 준수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존재한다. 그리고 법규의 목적과 취지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법규를 실질적으로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법망을 피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법규를 외형적으로 준수하는 데 급급한 경향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기업은 지금까지도 안전법제만을 준수하면 그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안전법규의 구체적인 내용을 뛰어넘는 내용으로 자율적인 안전규제를 하는 것을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정부와 기업 모두 안전법제에 대해 선제적으로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경향을 보여 왔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 다음의 효과적인 기술, 법규를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 왔다.

한편, 우리나라 국민은 사고가 발생하면 대체로 사법이 피해자 구제와 처벌뿐만 아니라 원인규명도 해줄 것이라고 성선설적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매스컴에 보도되는 ‘가해자’를 찾아내고 그 잘못을 밝혀내어 처벌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므로, 처벌에 필요한 증거만을 골라내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법관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만 의지하여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판단한다. 가령 검찰이 공소장에 중요한 증거를 담지 않으면 그 사고 진실의 원인규명도 엔지니어 등 전문가로부터 영원히 멀어질 수 있다.

사고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여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이 개선은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여론이 비등해지지 않더라도, 작은 클레임의 단계에서 리스크를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순차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이 때 유사사고의 판결문, 안전법규, 설계규격(표준) 등에 존재하지 않는 대책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판결문은 검찰의 공소제기에 초점을 맞춘 조사결과이고, 법규와 설계규격 등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것에만 의존하는 것으로는 효과적인 안전확보가 되기 어렵다. 안전법규와 설계규격을 우리나라의 현실에 적합하면서 실효성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구조사하고 정교한 내용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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