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국가’ 제외 등 예고하며 추가 제재 가능성 보여
시민단체 집회서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정부 규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인사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일본의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인사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일본의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반도체 3대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하면서 한일 대치 국면이 심화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양국 간 무역전쟁이 장기화·본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일본 정부가 TV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부품으로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반도체 제조 등에 필수적인 포토 레지스트, 에칭가스 등 3가지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이 중 포토 레지스트의 경우 전세계의 90%, 에칭가스는 70% 가량을 일본이 생산하고 있어 반도체를 주요 산업으로 삼고 있는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또 8월 1일부터는 한국을 안보상 우방이라 판단될 시 첨단 소재 등의 수출허가 신청을 면제해주는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할 예정이라 밝혔다.

이 같은 일본의 조치는 우리 대법원이 일본 강제징용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린데 따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또한 지난 3일 NHK를 통해 중계된 당수 토론회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과 위안부 합의 문제를 거론하며 ‘국제적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WTO 제소 등으로 국제사회에 부당함 호소
청와대는 일본 스스로 이번 조치가 보복적 성격을 띤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판단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해 이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등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가 ‘수량 제한’을 금지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1조 위반 소지가 있다고 규정하고 WTO 제소 절차에 돌입했다.

본격적인 제소에 앞서서는 지난 9일(현지시간) 정부는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부당함을 공론화했다.

백지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가 WTO 회원국들 상대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1개 국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경제보복 조치이기에 부적절하다고 설명한 것이다.

이와 함께 백 대사는 일본에 수출규제 조치의 조속한 철회를 요청하는 한편, 일본이 주장한 ‘신뢰 훼손’과 ‘부적절한 상황’은 현 WTO 규정상 수출규제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일본의 조치가 글로벌 공급망 차원에서 전 세계 전자 제품 시장에도 부정적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며, 자유무역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동임을 강조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WTO 회원국에 수출규제는 대북제재 위반에 대한 조치이자 안전보장상 필요한 조치로 WTO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靑, 30대 그룹과 핵심 기술 국산화 방안 모색
지난 10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30대 그룹 총수 간담회를 열고, 우리 산업의 대일(對日)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5대 그룹을 비롯한 국내 30대 그룹 총수 및 경영자들이 참석했다. 청와대가 우리나라의 핵심 기술과 부품·소재·장비의 국산화 비율을 높이는 산업구조 개편을 추진 중에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주력 산업의 대외 의존도를 줄이고자 하는 정부의 구상은 향후에도 일본이 수출 통제를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이에 문 대통령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데 있어 기업이 중심이 돼 달라고 당부하면서 전폭적인 정책적 지원을 약속했다.

또 주요 그룹 최고경영자와 경제부총리, 청와대 정책실장 간의 상시 소통체제를 구축하고, 장·차관급 범정부지원체제를 운영해 단기적 대책과 근본적 대책을 함께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청와대는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기업의 어려움과 대응 방안에 대해 청취했으며, 이날 참석자들이 건의한 사항에 대해서는 진행 상황을 사후에 상세히 알려주는 등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 밝혔다.

◇각 사회단체, 판매 중지·불매운동 추진하며 대응 나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우리나라의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도 불매운동, 판매 중지를 선언하는 등 적극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일 시민단체 서울겨레하나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정의기억연대도 같은 날 성명을 발표했다.

다음날 오전에는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무역보복을 규탄하고, 일본 제품의 판매 중지를 선언하는 합동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한민국 중소상인·자영업단체들은 과거사에 대한 일고의 반성 없이 무역보복을 획책하는 일본을 규탄한다”면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전 업종에 걸쳐 일본 제품 판매 중지 운동에 돌입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온라인상 곳곳에서는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일본 경제 제재에 대한 정부의 보복 조치를 요청한다’는 청원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편 최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등기가 완료되며 새로운 뇌관으로 떠올랐다. 아울러 일본이 한일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요청한 중재위원회 설치의 최종답변 시한인 오는 18일까지도 우리 정부가 입장을 내놓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일본이 한국 농산물 수입규제를 포함한 2차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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