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에 대한 투자가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인식변화 절실

김형렬 일환경건강센터장 l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고용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하청노동자 사망사고는 전체의 약 40%를 차지한다. 정부는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기 위해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 효과적인 결과를 얻기엔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충청북도 청주시에 민간에서는 최초로 협력사와 지역 내 영세사업장 근로자들의 직업병 예방을 위한 시설이 들어섰다. 대기업에서 영세사업장의 안전·보건·환경 개선을 위해 지원하는 첫 사례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원‧하청 공생협력체계의 물꼬를 터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를 비롯해 다른 대기업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출범한 ‘일환경건강센터’의 김형렬 센터장을 만나 개소 배경과 의의,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센터장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에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일하고 있고, 석면 등에 의한 피해연구, 노동시간과 과로사 연구 등과 관련된 정책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2015년에는 SK하이닉스 반도체 직업병 문제와 관련하여 산업보건검증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3월부터 일환경건강센터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일환경건강센터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최초의 SHE센터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의의와 개소 배경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재단법인 숲과 나눔 ‘일환경건강센터’는 SK하이닉스 협력사 및 청주지역 소규모 영세업체 근로자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한 공익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2019년 3월 설립됐습니다. 민간 기업이 자사 직원이 아닌 협력사와 지역사회 영세사업장의 안전·보건·환경(SHE)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적극 지원하기 위한 기관을 설립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환경건강센터에는 반도체 관련 기술력만큼 안전·보건·환경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SK하이닉스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4년 반도체 직업병 이슈가 불거진 이후 2016년 산업보건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작업환경에 대한 검증을 실시했습니다. 또 반도체 작업장 근로자들의 직업병 의심 질환과 관련하여 전‧현직 임직원은 물론 협력사 직원까지 고려해 지원‧보상체계를 마련했습니다. 이 때, 지원‧보상 대상에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시킨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지만 작업환경 개선 등 협력업체의 안전과 건강을 예방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2018년 7월 국내외 안전‧보건‧환경 분야의 우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350억원을 출연해 재단법인 숲과 나눔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숲과 나눔 재단은 질병 치료 보다는 발병 이전 단계에서 작업환경과 건강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직업병을 예방하고자 일환경건강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일환경건강센터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 산업위생사, 물리치료사, 심리 상담사 등이 상주해 반도체 및 청주지역 중소규모 사업장의 근로자들이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도록 안전보건교육과 작업환경 개선, 노동환경 실태조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단체 등과 협력하여 법과 정책에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현재 정부에서 위탁 운영 중인 근로자건강센터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근로자건강센터가 처음으로 만들어질 때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었고,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작업환경전문의로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제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일환경건강센터는 기본적으로 소규모사업장 근로자들에게 건강‧심리‧근무환경에 대한 상담, 업무 적합성 평가, 근골격계질환‧뇌심혈관질환 등 업무와 관련된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근로자건강센터와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차이점이라면 민간의 특성을 살려 비교적 많은 예산을 갖고, 지역사회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인근 타 지역에 위치한 석탄‧화력 발전소에서의 미세먼지 배출 등이 청주에 미치는 영향을 지역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등과 함께 연구하고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 볼 수도 있고 산업보건 뿐 아니라,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해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일환경건강센터는 산업안전보건서비스 제공을 통해 안전사고를 최소화하고 직업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 공익 기능을 수행하는 것뿐 아니라 지역사회 내 다양한 기관, 단체 등과 환경‧안전‧보건 분야의 난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고자 합니다.
 

Q. 2017년 기준 근골격계질환자(신체부담작업, 요통, 사고성 요통 등)는 5,195명으로 전체 직업병 환자(9,183명)의 56.6%를 차지했습니다.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근골격계질환을 효과적으로 예방‧관리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작업환경관리입니다. 복잡하지 않고 쉬운 작업이라 하더라도 잘못되고 불편한 자세로 계속 반복하다 보면 결국 질병을 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힘이 들지 않는다 하여 올바른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 작업 자세, 작업 시간, 작업량 등을 관찰하고 문제점을 개선해나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빠른 접근입니다. 네 가지 방법 중 근로자들에게 가장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초반에 통증 또는 피로감을 느꼈다면 충분한 휴식을 통해 호전시킬 수 있지만, 이를 방치하고 작업에 임하다 보면 근육, 인대, 연골, 혈관 등에 미세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부가 눈에 쉽게 띄지 않다보니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안일하게 생각하여 치료시기를 놓치고 결국에는 만성질환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이렇게 되면 일상생활에도 상당한 불편을 초래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면 바로 병원을 찾아 진단해봐야 합니다.

세 번째는 치료방법입니다. 단순히 통증관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작업환경과 방법 등까지 파악하여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신체적 문제가 업무를 수행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까지 면밀히 검토해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재활복귀입니다. 장해의 정도를 떠나 원직장 복귀율은 60% 정도 수준입니다. 근로자들이 이 사실을 더 잘 알기에 몸이 완전치 않아도 서둘러 직장에 복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의 근로자가 사업장에 복귀한다면 질환재발 및 악화는 물론 부상에 따른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근로자들이 지속적으로 질환을 관리하고 예방할 수 있는 제도 또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Q. 소규모 사업장에서 산업보건의 증진을 위해 어떤 부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한 정부가 어떤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소규모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예산과 인력, 시설 등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는 다른 안전 선진국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해 물음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 역시 지역사회 협력업체를 방문해 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한 바 있습니다. 그 결과 현장에서는 예상했던 바와 같이 크게 두 가지, 안전보건 관련 예산확보와 산업보건서비스 접근성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민간의 특성을 띤 센터의 특징을 살려 ‘안전보건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지역 협력업체에 재정적 지원을 해보자’라고 생각했고, 단발성이 아닌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재정적 지원을 통해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에 대한 투자가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을 목표로 본격적인 사업 착수에 들어갔습니다. 현재 해당 예산을 확보한 상태이며 사업주의 의지, 안전에 대한 감수성, 작업환경 관리상태 등을 고려하여 재정적인 지원과 맞춤형 컨설팅도 함께 제공할 계획입니다.

정책적으로도 소규모 사업장에서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산업보건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 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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