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인, 기술자를 넘어 수준 높은 지식과 테크닉 갖춘 ‘전문가’로 거듭나야”
“안전인, 기술자를 넘어 수준 높은 지식과 테크닉 갖춘 ‘전문가’로 거듭나야”
  • 김보현 기자
  • 승인 201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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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급변하는 안전보건 패러다임에 대비할 수 있는 역량 필요

ASSP, 안전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전 세계 수만 명의 회원으로 유명한 글로벌 안전기관, 바로 ‘미국 안전전문가 협회(American Society of Safety Professionals, ASSP)’다.

ASSP는 1911년 미국 보험회사에 소속된 안전기술자들이 만든 비영리 조직으로, 그해 3월 25일 뉴욕 맨해튼의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Triangle Shirtwaist Factory Fire)가 설립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 사고로 146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이 10~20대의 어린 여공(女工)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미국 사회를 큰 충격과 슬픔에 빠트렸다. 특히 미국민들은 이 엄청난 피해의 발단에 허술한 안전관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분노했다. 미 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탈출용 계단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비상구가 외부에서 잠겨 있어서 화재가 났을 때 근로자들이 신속히 대피를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화마에 쓰러져갔다.

이후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공감한 미국 보험회사의 안전기술자들이 힘을 모아 ASSP를 세웠고, 100여년이 지난 지금 ASSP는 전 세계 80여 개국 안전‧보건‧환경 분야의 전문가 3만9000여 명을 회원으로 둔 세계 최대의 안전전문기관 중 하나로 우뚝 섰다. 특히 안전 분야 국제 표준 및 규격 개발 관련해서는 국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본지는 제52회 산업안전보건강조주간을 기념해, 다이애나 스티걸(Diana Stegall) ASSP 신임 회장을 만나 안전철학과 협회의 주요 활동 사항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이애나 스티걸(Diana Stegall) 美 안전전문가협회(ASSP) 신임회장
다이애나 스티걸(Diana Stegall) 美 안전전문가협회(ASSP) 신임회장

 

Q. 회장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 속에 작은 소망을 하나 품고 있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 방법을 안전이라 생각하지 않았었고, 학창시절 안전을 ‘직업’으로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면서 연구 실험실에 자주 드나들었고, 이 과정에서 보호장비와 실험 재료의 위험성에 대해 조금씩 배웠던 게 안전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대학 졸업 후 모 신용보증회사의 인턴 면접을 보게 되면서 크게 달라졌습니다. 안전이 직업으로 보이게 된 것이지요. 그 뒤로 United Heartland, Chubb 등의 보험회사에서 근무를 하며 리스크 관리 및 통제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이후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하고자 지난 1990년 ASSP의 회원으로 가입했고, 이때부터 안전과 평생 인연을 맺게 되는 동시에 ASSP의 회원으로서 왕성한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05년 여성 최초로 올해의 안전전문가로 선정됐으며, 그간의 업적과 역량을 인정받아 지난 7월 1일 ASSP의 105대 수장이자, 역사상 여섯 번째 여성 회장으로 취임하게 됐습니다.
 

Q. 안전에 대한 회장님의 신념이나 철학이 궁금합니다.
어떤 일에 일정한 시간과 열정을 쏟아낸 뒤 으레 찾아오는 달콤한 속삭임이 있습니다. 바로 “이 정도면 됐다”라며 자신과 타협하려는 마음가짐입니다. 이는 안전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라면 가장 경계해야 할 자세입니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정부, 사업주, 근로자를 끊임없이 설득할 수 있는 지치지 않는 열정과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러한 신념을 갖게 된 배경에는 한 화재 사고가 있습니다. 모 사업장에서 컨설팅 업무를 하던 중 인근 가금류 가공 시설에서 큰 불이 났습니다. 이 사고로 근로자 25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으며, 56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조사결과 이날 화재는 부실한 안전시스템과 사업주의 미흡한 안전의식이 불러온 총체적 인재로 확인됐습니다. 락아웃/태그아웃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은 데다, 유일한 탈출구였던 비상구마저 도난 방지를 위해 외부에서 잠겨있었던 것이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특히 이 사례는 100여 년 전 ASSP의 설립 배경이 된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 참사와 그 발생유형이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점에서, 잠시나마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저와 ASSP 회원 모두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현재 워싱턴 D.C.에 소재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는 이날 화재의 참상을 생생히 보여주는 대문이 전시돼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거센 불길에서 탈출하려 했었던 근로자들의 검게 그을린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ASSP 회원들은 이 발자국이 우리 마음에도 새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되새기며 앞으로도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산업 분야의 안전보건 수준을 향상시켜나가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입니다.
 

Diana Stegall 신임 회장이 前 회장인 Rixio E. Medina로부터 회장을 상징하는 메달리온을 수여받고 있다.
Diana Stegall 신임 회장이 前 회장인 Rixio E. Medina로부터 회장을 상징하는 메달리온을 수여받고 있다.

 

Q. 중점 사업계획이나 전략적 추진과제는 무엇입니까.
최근 인공지능, 드론, 자율주행차, 도우미 로봇,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아이콘들이 사회 모든 분야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특히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하는 방식, 기술 등 일터의 작업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 ASSP에서도 선제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습니다. 먼저 지난해 1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우리 단체의 명칭을 과거 ‘ASSE(American Society of Safety Engineers)’에서 ‘ASSP(American Society of Safety Professionals)’로 변경했습니다. 여기에는 급변하는 작업환경과 안전보건 패러다임의 변화에 선제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전 분야 종사자들이 기존 기술자와 관리자의 개념에서 탈피해 수준 높은 전문 지식과 기술력을 갖춘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교육‧훈련 ▲안전 분야 국제 표준 개발 ▲안전보건 전문가의 가치 증진 ▲네트워크 강화 등 크게 4가지 혁신 과제가 담긴 전략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러한 전략 계획을 토대로 수준 높은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편 안전 컨퍼런스‧세미나‧캠페인을 비롯한 지식‧기술교류의 장을 지속 마련해 전 세계 ASSP 소속 회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미국표준협회(ANSI), 국제표준화기구(ISO) 등과 함께 급변하는 작업환경에 적합한 안전 분야 국제 표준 연구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일 방침입니다.

Q. 신임회장으로서의 포부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전략과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게 ASSP 회장으로서의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외에도 크게 몇 가지를 우선순위에 두고 ASSP를 이끌어 나갈 계획입니다. 먼저 ‘직장 내 폭력 문제’ 입니다. 최근 미국 산업현장에서 직장 내 폭력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성 근로자 사망사고의 원인 1위로 직장 내 폭력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에 저는 사업주 및 안전 관계자들이 직장 내 폭력과 관련한 초기 위험 징후 등 잠재적 위험 요소를 발굴해 선제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에 나설 계획입니다.

다음은 ‘사업주들의 인식 개선’입니다. 기업 내에서 우수한 안전관리가 이뤄졌을 때 생산성이 증대되고 기업 이미지 및 소속 근로자들의 업무 만족도가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영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많은 사업주들이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해당 작업에 임했던 근로자에게서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근로자는 총체적인 해결책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이에 ASSP는 사업주들이 근로자 안전의식 개선과 더불어 안전시스템과 설비의 철저한 구비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안전전문가들의 업무가 기업의 지속 성장과 경쟁력 제고에 필수요소임을 깨닫도록 이끌어 나갈 계획입니다.

끝으로 최근 ASSP에서는 직장 밖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스트레스 요인을 해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총체적인 근로자 보건관리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 사업장에서 추진하는 보건활동을 넘어 근로자들의 복지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가 사업장 내 근로자의 작업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ASSP는 이러한 요소 등을 감안한 총체적인 근로자 보건관리 기법을 사업장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개발 중에 있습니다.

 

미국 일리노이 주 파크리지에 소재한 ASSP 본사의 모습
미국 일리노이 주 파크리지에 소재한 ASSP 본사의 모습

 

Q. 우리 정부는 건설 분야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추락재해를 근절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ASSP에서는 건설업종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어떠한 활동을 하고 계신지요.
추락사고는 부딪힘, 끼임, 감전 등과 함께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로, 미국 또한 추락사고가 근로자 산재 사망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ASSP는 안전 시스템 구축과 현장 안전의식 제고 등 크게 2가지 측면에서 건설재해 예방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안전 시스템 구축과 관련한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표준협회(ANSI)와 함께 개발한 ‘추락 및 낙하방지 표준(ANSI/ASSP Z359)’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표준에는 고소작업 시 작업안전수칙, 보호구‧안전장비, 사고 발생 시 대피‧구조 방법 등을 골자로 하는 추락방지 안전시스템 구축 방법과, 사업장 스스로 추락 위험요소를 식별‧발굴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담겨 있습니다.

다음으로 건설현장의 안전의식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주로 캠페인 전개에 중점을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ASSP는 매년 5월 감독당국인 미국 안전보건청(OSHA)과 함께 추락재해 예방 캠페인(National Safety Stand-Down)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최고 경영자부터 일선 현장 근로자까지 추락재해 예방의 중요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 및 훈련 등을 위한 일정 시간을 반드시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밖에 미국 건설사 연합 주관으로 5월에 운영하는 ‘건설안전주간(Construction Safety Week)’도 저희가 현장 안전의식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 기간 동안 현장 근로자들은 본인이 느끼고 있는 추락 등 각종 위험요소에 대한 개선을 경영층에 강력히 요구할 수 있으며, 관리감독자는 이를 바탕으로 즉각적인 시정조치에 나서야 합니다.

Q. 한국 사업주와 안전보건관계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 이는 제가 안전 분야 전문가, 사업주, 정부 관계자 등을 만날 때마다 거듭 강조하는 말입니다. 현장을 떠나서는 위험을 볼 수 없고, 무엇이 개선돼야 하는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조성하고 싶다면, 문자와 숫자가 가득한 서류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북적대는 현장으로 나가시길 추천합니다. 안전에 대한 현장 근로자와의 격의 없는 소통에서 위험요소와 개선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기업의 안전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안전전문가와 적극 협력하시길 권합니다. 안전은 그 어떤 분야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안전이 기업 내 일상적인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전을 기업 경영의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선정했더라도, 결국 문화로 자리 잡지 못하면 안전은 쉽게 흔들리고 맙니다. 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 전기분야의 어느 하청업자와 함께 근무했던 경험을 조금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그는 근로자가 작업 중 사소한 감전을 당하지 않으면, 그날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잘못된 생각이 현장의 안전을 무너뜨리는 제일 위험한 요인입니다. 부디 한국의 사업주와 안전관계자분들은 이러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절대 산업현장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굳건한 안전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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