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교수의 산업안전보건법 해설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사전규제의 강약과 사후규제의 강약의 조합에 의해 규제유형을 4가지로 나누어 다음 그림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민주화가 진척된 국가의 경우, 2가지의 규제가 함께 강한 A유형과 2가지의 규제가 함께 약한 C유형은 제외된다고 볼 때, 사전규제가 강하고 사후규제는 약한 B유형 또는 사전규제가 약하고 사후규제는 강한 D유형 어느 하나를 기조로 하는 규제로 수렴되어 간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영·미는 사후규제가 강한 D유형에 해당하고, 우리나라, 일본, 독일은 사전규제가 강한 B유형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구급차보다도 먼저 변호사가 온다거나 구급차의 뒤를 쫓아가 의뢰자를 획득하는 변호사가 있다고 말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의 진위 정도는 어떻든 간에 무슨 일이든 소송에 의해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안정적이고 강력한 관료기구는 없다.

이에 반해, 종래의 우리나라는 관료의 지도의 의해 사회가 보다 좋은 상태로 이끌어진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이 문제에 대한 법규제가 턱없이 미흡하다.”, “법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관료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관료에 대한 불신과 비난이 강하게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앞으로는 관료제도를 전제로 한 사전규제에 대한 신뢰와 기대는 지금까지보다 적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쉽게 사후규제에 강하고 사전규제가 약한 D유형의 사회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소송을 싫어하는 국민성과 소송을 부담스럽게 하는 소송비용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라도 소송에 의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국민의 행동원리가 변화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법원 예산을 늘리는 것에 국민이 쉽게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변호사가 증가하고 있는 현 추세가 앞으로도 유지된다면 과거와 비교할 때 소송부담이 점차 줄어들고 소송에 호소하는 비율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사후규제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그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 공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그 이유는 재판에서 반드시 사실의 규명에 우선순위가 두어져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에서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한다.”는 형사소송원칙이 있으므로, 변호인이 제시한 가설을 배척할 수 없으면 무죄를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사고의 양태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대체로 검찰에서 기소를 단념하거나 입증이 용이한 사항으로 좁혀 기소하게 된다. 민사재판에서는 분쟁해결이 목적으로서 반드시 진실의 발견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취하여야 할 대책은 B유형을 기조로 하면서 D유형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기업의 창의와 궁리를 살리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안전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