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fety Column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난영화로는 ‘해운대’, ‘감기’ 정도가 꼽혀왔다. 그런데 최근 이 두 작품을 넘어 재난영화의 새로운 왕좌에 오른 영화가 있다. 바로 관객수 10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아쉽게 막을 내린 ‘엑시트’다.

엑시트의 줄거리는 이렇다. 청년백수 용남(조정석 분)은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하지만 매번 고배를 마신다. 누나가 셋이 있는 데 모두 결혼하여 출타하고 용남이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셋째누나 정현(김지영 분)은 반찬을 얻겠다며 가끔 친정에 오는데, 올적마다 옷장 속 각종 산악장비들을 보고 용남이를 타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용남은 대학시절 동아리 후배 의주(임윤아 분)가 일하는 곳에서 어머니 칠순 잔치를 열게 되는데, 하필 이때 인근에서 독가스테러가 발생하여 가족과 함께 건물에 갇히게 된다. 확산된 유독가스가 건물 안으로 차오르기 시작하자 용남이는 가족, 연회장 직원들과 함께 옥상으로 대피하려 하지만 굳게 닫힌 옥상 출입문에 절망하고 만다. 하는 수없이 용남은 밧줄을 몸에 동여매고 건물 외벽을 등반한다. 그리고 간신히 옥상에 올라 출입문을 여는데 성공하고, 이후 흥미진진한 도심 탈출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필자로 하여금, 1971년 12월 25일 발생한 ‘대연각호텔’ 화재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잠겨있어 옥상 출입구 인근에서 20여명이 질식사했었다.

이런 대형재난을 겪고도 우리나라는 큰 변화가 없어 아쉽다. 필자가 얼마 전 점검한 바에 의하면 아직도 상가, 오피스텔, 아파트 건물까지 옥상 출입문이 닫혀 있는 건물들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 어떤 곳은 옥상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아예 철문으로 막아 놓은 곳도 있었다.

옥상문 개방 의무는 「주택법」 상 공동주택과 「건축법」 상 건물이 5층 이상이고 제2종 근린생활시설 중 공연장, 종교집회장, 인터넷컴퓨터게임시설 제공업소, 문화 및 집회 시설 등이 건물 내에 있는 경우와 피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옥상광장을 설치해야 하는 건물일 경우에만 있다. 옥상 문을 개방해 놓지 않는 이유는 자살소동, 비행청소년 등의 범죄와 사고 발생 우려, 쓰레기 무단투기, 흡연공간으로 사용 등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6년 국토교통부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16조의2를 개정해 주택단지 안의 각 동 옥상 출입문에는 비상문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하지만 2016년 법 개정 이후 지어진 아파트에만 적용된다는데 문제가 있다. 신축아파트가 아니고 층수와 용도 등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건물은 법적으로 옥상 문 개방 의무도 없고 비상문 자동개폐장치도 설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방관서 입장에서는 사실상 제재를 가할 수단이 거의 없다. 그저 옥상으로 연결되는 피난계단 등의 통로에 물건을 쌓아 놓았을 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정도이다.

잠긴 옥상 출입문으로 인해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시민들의 안전의식을 높여서 자율적으로 비상문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하도록 하든지, 법을 강화하여 신축일자·층수·용도와 관계없이 모든 건물에 비상문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하든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상문 자동개폐장치의 구입비용은 50만∼100만원 정도로 비교적 저렴한 편이지만, 자동화재탐지설비, 유도등 등과 연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설치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정부에서 영세한 건물주나 영업주의 건물에 대해서는 무이자 할부지원, 장기 저리 융자 같은 지원책을 마련, 시행해야 한다.

더불어 기존 스프링클러설비의 설치지원제도와 같이 비상문 자동개폐장치의 설치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것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추가적으로 관계당국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비상문 자동개폐장치의 중요성을 알리고 홍보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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